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해 (문단 편집) === 북한 소재 === 현재까지 발굴된 1172곳의 발해 유적 중 총 84곳이 북한에 소재해 있다.[[https://www.google.com/amp/s/www.hankyung.com/amp/202303148226Y|#]] * [[개심사]]: [[함경북도]] [[칠보산]]에 위치. [[대웅전]] 보수 과정에서 [[선왕]] 9년(826) 병오 3월 15일에 창건됐다는 종이가 든 나무함이 발견되어 발해 시대에 창건된 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반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발해의 사찰 유적으로, 북한에도 통일신라의 사찰은 꽤나 존재하지만 발해 사찰은 이 함경북도의 개심사만이 유일하기에 역사적 중요성 또한 매우 높다. * 고읍성: [[평안남도]] [[영원군]] 용성리 위치. 성벽의 둘레길이는 2,200m이며 현지에서 발해성으로 불리는 산성이다. 북한 학계의 승성호는 이 산성을 이 일대의 양마성과 함께 발해의 초기 성으로 판단하였다. * 궁심고분군: [[함경북도]] [[회령군]] 궁심동 위치. 발굴된 궁심고분군의 무덤 형식들 중 지상식 석실봉토분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다만 석실 내 석관의 존재와 원형 혹은 타원형에 가깝게 모를 줄인 석실의 평면형태 등은 전형적인 발해 고분의 특징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어, 학계에서는 이를 발해 고분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지역성으로 보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 부거석성: [[함경북도]] [[청진시]](광복 당시 [[부령군]]) 청암구역 부거리 위치. 성 둘레 길이는 1,236m이며 현재 북한 학계에서 [[동경용원부]]의 소재지로 주장하는 유적이다. * 양마성: [[평안남도]] [[영원군]] 마산리에 위치. 성 둘레길이는 약 100m이고 성 부근에서 말굴레, 말안장, 말편자 등의 마구류와 금속제 활촉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이 유적을 소개한 북한 학계의 승성호는 이 성이 발해임금이 용성리에 성을 쌓고 살 때에 그가 사용하던 군마들을 사양 관리하였던 말방목지였다고 전하는 『녕원군지』와 이 지역의 노인들의 의견을 전하면서, 마산리(馬山里)라는 지명도 발해 때 이 일대에서 말을 많이 길렀기 때문에 유래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다만 용성리에 있는 발해성(고읍성)에서 발해임금이 살았다는 『녕원군지』의 내용과 관련하여서는 발해가 이 일대에 도읍을 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발해임금과는 관련이 없음을 지적하였다. * 양화사: [[평안북도]] [[태천군]]에 있는 사찰로 개심사처럼 발해 시대 유적임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은 없지만 <양화사사적기>에서는 발해 시대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전하고 있다. * 연봉리 기와가마: [[평안북도]] [[선천군]] 연봉리 위치. 북한 서쪽 지역에서 발견된 거의 유일한 발해 유적이다. * 오매리절터: [[함경남도]] [[신포시]] 금호지구 오래미 절골 위치. 고구려 문화층과 발해 문화층으로 나뉘며 발해 사지에는 고구려식 1탑 3금당 건물 배치를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 운두산성: [[함경북도]] [[회령시]] 유선노동자구 위치. 산성이 자리해 있는 운두산은 해발 570m인 비교적 높은 산이며 성 둘레의 길이는 대략 6km이다. * 청해토성: [[함경남도]] [[북청군]] 하호리에 위치. 동벽 332m, 서벽 342m, 남벽 328m, 북벽340m 총 둘레 1,342m의 정방형 평면형태를 갖춘 흙으로 쌓은 평지성이다. 주변에 위치한 거산성, 안곡산성, 룡전리 산성 등과 함께 수도 방위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평리 고분군 같은 대규모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는 점, 치, 망루 등 성곽시설을 갖추고 있는 점 등의 고고학적 근거를 토대로 학계에선 현재 [[남경남해부]]의 유력한 소재지로 비정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