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병자호란 (문단 편집) === 압록강을 건넌 청군 === [youtube(hQ82EALP6lo)] 1636년 음력 12월 2일, [[청태종]]은 명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심양에 정친왕 지르갈랑을 남겨두고 [[타타라 잉굴다이]](용골대), 마푸타(Mafuta, 馬福大, 馬福塔)를 지휘관으로 하여 [[한족]], [[몽골인]], [[만주족]] 혼성 부대 45,000명[* 이 혼성 부대에 조선인도 포함되어 있었다.]을 거느리고 조선을 침공하였다. 12월 8일 300기의 선봉대가 위장한 채로 [[압록강]]을 도하했고, 이후 큰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조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때 홍타이지는 부대 전체를 하나의 집단으로써 한 번에 같이 이동하지 않고 이들을 몇몇의 작은 부대로 나누어서 다양한 루트와 시간차를 두고서 진격시켰다. 물론 조선도 대비를 안한게 아니라서 [[의주부]]의 백마산성에서 임경업 휘하에 최소 4,000명에 달하는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으나[* 이때 임경업 휘하에 고작 300명밖에 없었다는 설이 널리 퍼져 있지만 이는 후대에 창작된 낭설에 지나지 않는다. 승정원일기 1636년 3월 4일 기사 "백마산성에 입방할 군사로 현재 [[의주부|의주]]에 있는 자가 1,600명인데 이들 군사로 하여금 돌아와 안주를 지키게 하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 군사들을 모은다면 의주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정식으로 부방하는 남군(南軍) 2,400명을 백마산성에 보태어 방어하게 하고…"] 청나라는 이를 무시하고 신속히 남하했다. 이후 모든 산성을 우회해 청군은 단 4일 만에 [[개성시|개성]]에 도착했고, 이후에도 신속히 남하하였다.[* 하루에 78km로 [[제2차 세계대전|300년 뒤에 치른 2차 세계대전]]의 [[프랑스 침공]] 당시 [[롬멜]]의 기갑부대보다도 빨랐다고 한다.] 만약 조선군이 이 상황에서 반격을 했다면 조선군에게 퇴로가 막혀 그대로 궤멸당할 수도 있는 작전이였다. 그러나 [[청나라]]도 이런 신속한 진격을 할 수 있던 배경이 있었는데, 당시 조선군이 [[임진왜란]]의 충격을 간신히 추스리던 참에 12년 전 [[이괄의 난]]이 터져 금쪽 같은 [[평안도]] 북방의 정예병 12,000명이 박살나버리는 바람에 조선은 청의 진격로를 막을 수 있는 방어군이 부족했고, 이를 회복도 못한 시기였는데 그때 청나라군이 침공한 것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