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산요전기 (문단 편집) == 한국 관련 == 일본 전자 회사 중 상대적으로 [[대한민국]]에 우호적인 기업이었다. 대부분의 일본 전자 회사들이 1970~80년대 당시 [[대만]]에 주로 투자한 것에 비해 산요는 한국에 주로 투자했다. 물론 대만에도 진출하였으며 대만에서의 산요는 1963년에 설립. 2013년 'SANLUX'로 변경되었다. [[삼성전자|기술 이전]]도 제법 했고 한국에 투자도 기업 규모에 비해 많이한 편이다. 1957년에 산요와 합작한 한국 법인 '삼양전기'가 설립하면서 한국에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영문 표기는 일본과 동일한 'SANYO'가 아닌 한글 독음으로 'SAMYANG'이었다. 선풍기와 전기 난로를 주력으로 생산했으며, 1960년대 초반에는 합작으로 TV도 생산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삼양전기는 [[삼성전자]]가 설립된 이후로 자금난을 겪다가 결국 1975년에 최종 부도 처리되었다. 한국 [[마산회원구|마산자유무역지역]]에 '한국동경시리콘'이라는 이름의 반도체 생산 공장이 있었으나, 모기업의 실적 악화로 2008년에 [[http://clien.career.co.kr/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7179022|문을 닫았다.]] 이 때 임직원 300명에게 5년치 임금을 일시불로 지급했다고 한다. 1986년 구미전자공단에서 한국동경전자에서 라이선스로 산요 소형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만들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에는 산요전기와 한일 자동 펌프로 유명한 [[한일전기]]가 기술 제휴를 맺어 환풍기를 생산 했었다.[* 한일 환풍기의 부품은 산요전기의 부품을 사용했으며 2007년 한일전기와 기술제휴가 종료되어 산요전기의 부품을 쓸 수 없자 환풍기 틀을 플라스틱으로 만들거나 모터의 콘덴서를 없애버리는 등 -- 한일의 환풍기가 초심을 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선풍기도 산요와 같이 EF로 시작하는 모델명을 사용했으며, 한일의 레드모터 브랜드도 사실 산요에서 1969년부터 선풍기에 쓰던 브랜드였다.[[http://www.youyuhyogo.org/sc-data/ef-his/senpuuki-hensen/sanyo-ef-index01.htm|#]] 한일전기는 사명 HANIL을 산요의 위 1960~70년대 로고 글꼴과 비슷한 글꼴을 썼다. 산요가 1986년 로고 글꼴을 바꾼 후에도 한일전기는 한참동안 로고를 바꾸지 않다가 2000년대 와서야 바꿨다. 이후 고딕체 형식의 글꼴을 거쳐 현재는 필기체 형식으로 변경되었다. 한일전기는 산요라는 상표를 달고 오디오를 한국에서 만들어 메이드 인 코리아가 쓰여진 제품도 팔았다. 물론 한국에 정식 판매하지는 않고 100% 수출했다. [[샤프전자|한국샤프]]가 이런식으로 만든 오디오를 한국 시장에서도 출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일전기와의 제휴관계는 2007년에 종료되었다. [[삼성전자]]도 설립 초기였던 1969년 한국 삼성전자공업과 일본 산요전기의 합작사인 '삼성-산요전기' 설립하여 TV 제품을 만들기도 했으며 이후 1975년 삼성산요가 '삼성전기'[* 현재의 삼성전기의 전신은 '삼성산요파츠'로 지금의 삼성전기와는 별개의 회사이다.] 로 바꿨다가 1977년 삼성전자에 흡수합병되었다. [[일본]] [[언론]]들도 한국 전자업체의 성공과 자국 전자업체들의 몰락을 보도하며 항상 언급하는 일화다. 현재 삼성전자와 산요의 위상을 생각하면 참으로 상전벽해와도 같다. 한국에서 [[피처폰]]도 판매했다. 산요 이름으로 판매했던 기종은 C111SA, SMP-A017, SCP-B017, SCP-A011이 있었으며 통신사는 [[신세기통신]]이었다. 이후 휴대전화 사업이 카시오&히타치로 합쳐지며, [[카시오 지즈원 CA201L]]이 한국에 마지막으로 판매된 [[휴대전화]]다. 통신사는 [[LGU+]]. C111SA의 경우 전형적인 바 타입 디자인에 로밍폰[* IDO의 글로벌 패스포트 지원 단말기였다.]으로 꽤 화제를 불렀으며 출시가 65만원. SMP-A017 휴대폰은 배터리가 길어야 1-2일 정도 가던 시절에 이 배터리가 2주 가는 16박 17일 폰으로 홍보했으며 [[대용량 배터리 기준]] 신민아가 양민아 시절에 광고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