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포왜란 (문단 편집) == 전개 == 1510년 4월 4일 일본인들은 '''약 4,000명~5,000명''' 정도의 사람들을 모아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는데 아예 군대가 되어 각지에 불을 지르고 난동을 피웠다. 이러한 상황에 부산포와 제포 등이 함락됐다. 동래성[* 이 일이 있고 82년 뒤 이곳에서 [[동래성 전투]]가 벌어지고 또 다시 애어른 할 거 없이 동래성 주민들은 전부 학살 당한다.]과 웅천이 공격당하는 등 피해도 컸다. 특히 조선의 병사와 민간인 272명이 죽었고, 재산 피해는 이보다 훨씬 심하여 민가 796호가 파괴되었다. 1510년 4월 13일 내란을 선동해놓고도 확전을 염려한 대마도주는 서계를 보내 강화를 요청하였으나 조선 조정에서는 [[황형]](黃衡), 유담년(柳聃年, ? ~ 1526)을 경상좌우도방어사(慶尙左右道防禦使)로 임명하여 군사를 보내 이들을 토벌하였다. 1510년 4월 19일 제포에 모여있는 왜인들을 세 갈래로 포위하여 8시간 동안 협공한 끝에 물리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