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포왜란 (문단 편집) == 결과 == [include(틀:조선시대 일본과 맺은 수교)] 폭동을 지원한 대마도주는 폭동이 진압되어 조선 조정에서 [[왜관]]을 폐쇄하자 곧바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어서, 폭동을 주도한 주모자의 머리를 바치는 등 여러가지로 교역 재개를 위한 노력을 했다.[* 사실 애초부터 쓰시마 섬은 조선과의 확전을 원하지 않았다.] 결국 대마도주와 왜인들, 그리고 대마도주의 요청을 받은 [[무로마치 막부]]의 지속적인 간청 등으로 인해 1512년에 조선 조정에서 '''임신약조'''를 맺고 교역을 다시 재개해줬다. 해당 조약의 내용은 삼포 거주 불허, 세사미두 및 세견선을 반감,[* 계해약조의 200석 50척을 100석 25척으로, 차후 임진왜란 후 기유약조 시에 100석 20척으로 변화.] 삼포 중 제포(薺浦)만 개방, 제포 외 왜인은 왜구로 간주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일으킨 살인사건 때문에 얻은 제약, 또는 그나마 재개해준 혜택도 예전보다 줄어들자 괘씸하다고 여겨, '''임신약조'''로 인한 교역량 축소에 불만을 품은 대마도주와 왜구들에 의해서 또 다시 [[사량진 왜변]]이 일어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