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설문해자 (문단 편집) == 상세 == 서기 100년부터 집필하여 121년에 완성했다. [[전서|소전체]]를 기반으로 하여[* 글자의 유래를 해석할 때엔 가장 오래된 서체인 [[갑골 문자]]를 기반으로 해야 합리적이다. 그러나 [[상나라]](기원전 11세기 멸망) 이후 서서히 사라진 갑골문이 다시 후세에 알려진 것은 대략 3천 년 뒤인 [[청나라]] 말기(19세기 말)였고, 그때까지 허신을 포함하여 아무도 갑골문에 대해서 몰랐다.] 글자의 유래를 해석한 책으로, 정문(正文, 기본자) 9353 자 + 중문(重文, 이체자) 1163자[* 허신이 직접 집필한 원본은 소실되고 후대의 학자들이 남긴 판본만이 현존하기 때문에, 허신이 원본 설문해자에 한자를 얼마나 수록했는지는 모른다.]를 수록했다. 편찬 당시에는 14편이었다. 상·하편으로 나눠진 후에 각 부수의 목차인 부목을 추가해 15편 상(上)편, 시간이 흘러 아들인 허충이 안제에게 올린 상주서 15편을 하(下)로 하여 총 30편 구성이 되었다. 설문해자의 집필 의도는 각 [[한자]]의 본래 뜻과 음, 표준 형태를 규정하여 설명하고, 글자의 구조를 해석하는 것이다. 작가 허신이 살았던 후한 시대에는 [[예서]]라는 한자 서체를 사용하였는데, 당시엔 예서의 표준 글자체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문자를 써서 비공식적인 이체자가 늘어났고, 한자가 처음 등장한 [[상나라]] 시기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기 때문에 한자의 정확한 뜻과 음이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잊혔다. 상고시대 [[창힐]]이 만든 글자가 어떠한 변화도 거치지 않고 전해진 것이 예서라는 믿음이 있었을 정도였다. 결국 이러한 세태 때문에 학자들이 각 글자를 잘못 해석하고, 그릇된 해석을 경전 해석에 그대로 적용하여 학문이 변질되는 일이 생기자, 허신은 이를 바로잡고자 설문해자를 지었다. 물론 당시에도 5천여 자가 실린 양웅(楊雄)의 『훈찬편(訓纂篇)』과 같은 한자 교육용 서적이 있었다. 하지만 설문해자는, 중국 최초의 문자학 관계 서적인 것은 아니지만, 수록된 글자를 해설하고 정리한 체계가 이전에 나온 어느 문자학 서적보다 훌륭했다. 그리하여 후세의 많은 학자들이 고대의 한자를 연구함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책으로 여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