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설문해자 (문단 편집) == 후대 판본 == 설문해자는 [[자전(사전)|자전]]의 시초로, 후한대 한자 연구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설문해자가 본격적으로 대접을 받고 연구된 때는 [[고증학]]이 발달한 청나라 때였다. 사실 청대 이전에도 설문해자 연구의 움직임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당(통일왕조)#s-2.4|당나라 말기]]의 학자 이양빙(李陽氷)이 독자적으로 설문해자를 연구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이양빙은 책 내용 중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면 함부로 고쳤기 때문에 후대 학자들이 비판했다. 이후 이양빙이 고친 내용 중에 일부 타당한 것들이 있었음이 밝혀졌지만... 이양빙이 직접 쓴 판본은 현존하지 않고, 후대 학자들이 베껴 쓴 것만이 남아 전한다. 청대의 설문해자 연구는 매우 활발하여 각 연구 서적을 따로따로 분류해야 할 정도였는데, 보통 고증작업만 한 것, 개정을 한 것, 주석을 가하고 연구한 것, 이 3종의 연구 서적들을 비교하거나 보충, 정정한 것으로 나뉘었다. 그 중 전면적인 [[주석(언어)|주석]]을 가하고 연구한 것이, 특히 단옥재(段玉裁)의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계복(桂馥)의 설문해자의증(說文解字義證)가 가장 널리 퍼졌는데, 이 책들의 저자들은 설문석례(說文釋例), 설문구독(說文句讀)의 저자 왕균(王筠), 설문통훈정성(說文通訓定聲)의 저자 주준성(朱駿聲)과 함께 청대 설문 4대가(說文四大家)라 불린다. [[분류:한나라의 서적]][[분류:한자]][[분류:자전(사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