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손호 (문단 편집) === 즉위 이전 === 아버지 [[손화]]가 승상 손준의 명령으로 자결한 후, 적모 [[장비(손오)|장비]](張妃)도 손화를 따라 죽었으므로, 친모인 [[하희(삼국지)|하희]]에게 양육받았다. 경제 손휴 시대에 오정후(烏程侯)에 봉해졌다. 서호의 백성 경양이 손호의 관상을 보고는, 매우 고귀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다. 손호는 속으로는 기뻐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수신기]]》에 따르면 오나라 손량 오봉 2년 5월에 양선현의 이리산에서 큰 돌이 저절로 섰다. 이는 손호가 허물어졌던 선조의 가문을 계승하여, 다시 그 지위를 복위할 때임을 알려준 것이다. 오나라 손휴의 영안 4년 안오현의 평민 [[진초]]가 죽은 지 이레 만에 다시 살아나 무덤을 뚫고 나왔다. 오정후 손호가 망하였던 자신의 가문을 이어 받아, 제위에 오를 징조였다. 손휴가 죽을 때, [[촉한|촉나라]]가 멸망했고, 남쪽의 변경인 교지에서는 반란이 일어나 국가가 혼란스러웠기에 사람들은 훌륭한 군주를 얻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만욱]]은 손호의 옛 친구였는데 그는 손호가 총명하다며 [[복양흥]], [[장포(손오)|장포]] 등과 협의해 손호를 제위에 올리길 희망했다. 복양흥과 장포는 손휴의 아내, [[주부인]]에게 손호를 후사로 삼도록 하라고 권유하였다. 주부인은 "나는 지아비를 잃은 과부인데, 어찌 사직의 걱정을 알겠습니까? 단지 오나라가 멸망하지 않고 종묘가 의지할 곳이 있으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손호를 제위에 올렸다. 황제가 될 당시 손호는 23세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