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운교 (문단 편집) === 수운교 창교와 본당 건립 === 이상룡은 1923년 서울에서 천황교라는 교명으로 창교하려 했으나 일제가 허용하지 않아 수운교라는 교명으로 창교했다. 이상룡은 자신이 최제우의 후신이라 선전하며 포교 활동을 전개했고, 동학계 종파들인 [[천도교]]ㆍ시천교ㆍ상제교 신자들이 다수 모여들었다. 그러나 이들 종교들로부터 최제우를 [[사칭]]한다는 논란과 시비가 일어나자 1925년에 교단 본부를 충남 대덕군 탄동면 추목리(현재 대전 광역시 유성구 추목동) 금병산 기슭으로 이전 했다. 1929년에는 조선 시대 건축술을 잘 보여주는 수운교 도솔천을 건립했다. 수운교 도솔천은 이상룡이 직접 설계하고 (경복궁과 [[보천교]] 본당 십일전을 지은) 도편수 최원식이 건축한 걸작이다.[* 그래서 세 건물의 외형이 매우 비슷하다.] 이후 사람들을 상대로 포교하여 인근에 수운교 신앙촌을 형성했다. 1933년부터는 천단 내에 금강탑ㆍ미륵탑ㆍ무량수탑을 건립하였다. 1937년 일제의 식민 통치가 본격적으로 민족 말살기에 접어들면서 문화 탄압이 거세지자 종교 생명의 연명책으로 1938년에 일본의 진종불교(眞宗佛敎)와 야합하여 불당을 짓고 [[아미타불]]을 안치, 흥룡사(興龍寺)란 간판을 걸고 활동하였으나, 광복 이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