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쉐보레 (문단 편집) == 역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tatic.betazeta.com/Chevrolet-Bow-Tie-94.jpg|width=100%]]}}} || ||<#cf9835> {{{#ffffff '''역대 쉐보레 로고'''}}}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hevrolet-New-Motto-1024x576.webp|width=100%]]}}}|| || 2023년 이후 사용 중인 2D 로고[* 단 이 2D 로고는 홈페이지나 광고에서만 활용되며 실차엔 [[르노코리아]]처럼 기존 3D 로고를 변경없이 부착 중이다.] || 1911년, 윌리엄 크레이포 듀런트(William Crapo Durant)와 루이 셰브럴레이(Louis Chevrolet)가 합심하여 자동차 회사를 세운다. 사명은 당시 레이서로 명성이 높았던데다 발음하기 쉬웠던 셰브럴레이의 이름에서 따와 '쉐보레 모터 컴퍼니'로 결정했고, 첫 차량으로 4.9L 6기통 엔진을 얹은 고급 승용차 '클래식 식스(Classic Six)'를 선보였다. 클래식 식스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정교한 완성도와 좋은 주행질감으로 호평을 받았고, 쉐보레는 창립과 동시에 시장에서 주목받는 브랜드로 올라선다. 자동차 산업이 본격적으로 태동한지 불과 20년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창립자는 갈등을 겪는다. 사업적인 부분에 있어선 그 누구보다도 탁월했던 듀런트가 [[포드 모델 T]]의 성공을 지켜보며 쉐보레 또한 보급형 차량에 주력해는 것을 제안했지만, 모터스포츠에 진심인 셰브럴레이는 이러한 제안이 썩 내키지 않았던 것. 하지만 어찌저찌해서 1915년에 첫 4기통 모델인 H시리즈가 양산됐고, 저렴한 가격으로 포드 모델 T와 정면승부를 벌이며 결과적으론 듀런트의 선택이 쉐보레의 판매량 증대에 큰 도움을 주었다. 물론 셰브럴레이의 입장도 아예 무시받진 않았기에 1917년엔 첫 V8 엔진을 양산하는 등 고성능 포트폴리오도 꾸준히 확장시켜 나간다. 이후 회사는 듀런트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1918년에 [[제너럴 모터스|GM]]과 합병한 뒤, 단숨에 미국 2위 자동차 메이커가 된다. 승용차 외에 트럭을 비롯한 다양한 차량들의 생산도 개시했고, 유럽[* [[덴마크]], [[벨기에]], [[스위스]], [[폴란드]], [[독일]], [[영국]] 등.]과 일본을 비롯해 해외에도 적극적으로 공장을 세우며 이 때부터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쉐보레100만대.jpg|width=90%]]}}} || ||<#cf9835> {{{#ffffff '''6기통 차량 100만대 생산 돌파를 자축하는 광고 (1929)'''}}} || GM에 인수된 이후엔 규모가 큰 거대기업답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전설적인 디자이너 할리 얼(Harley Earl)을 영입하며 '개인화'에도 초점을 맞췄는데, "모든 지갑과 모든 목적에 맞는 차"(a car for every purse and purpose)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회사 내에 치량의 미적 디자인을 책임지는 '아트 앤 컬러' 부서를 신설했으며, 세계 최초로 '''구매자가 차량의 색상을 선택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생산의 효율성만을 고려하며 디자인과 색상엔 신경을 쓰지 않았던 당시의 포드[* '''"당신은 어떤 색깔이든지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단, 그것이 검은색이기만 하다면요."'''라는 말로 유명하다.]와 쉐보레의 격차를 큰 폭으로 벌렸고, 1927년엔 연간 생산량 100만대를 돌파하며 포드를 누르고 '''미국 1위 자동차 기업'''이 된다. 이외에도 세계 최초로 상용 차량에 6기통 엔진을 도입, 최초의 독립 서스펜션 개발, 선구적인 스테이션 왜건 차량을 개발하는 등 기술적 성장을 이뤄낸다. 대공황 시기에도 이러한 행보는 꾸준했다. 경쟁사가 파산 위기에 몰리는 와중에도 세계 최초의 '전륜' 독립 서스펜션을 도입하는 등 기술적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며, 1935년엔 '''세계 최초의 SUV'''인 [[쉐보레 서버번|서버번]]을 선보이기에 이른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자동변속기광고.jpg|width=100%]]}}} || ||<#cf9835> {{{#ffffff '''자동변속기 장착을 홍보하는 광고 (1950)'''}}} || 1950년엔 당시만 해도 극소수의 고급차에나 들어가던 '''자동변속기를 세계 최초로 보급형 차량에 장착'''해 운전의 과정을 한층 쉽게 만들어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자동변속기가 주류로 자리잡는데에 크게 기여했으며, 전 세계적인 자동변속기 차량의 대중화에 영향을 끼쳤다. 고성능 차량의 개발에도 꾸준한 관심을 보였는데, 재규어의 스포츠카를 보고 의기투합하여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 보디'''를 비롯한 온갖 신기술을 때려박은 최초의 대중형 스포츠카인 [[쉐보레 콜벳|콜벳]]을 내놓기도 했다. 몇 년 뒤엔 새로운 '''스몰블록 V8 엔진'''을 선보이는데, 우수한 성능과 간단한 구조에서 오는 견고한 내구성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수 많은 미국산 트럭과 스포츠카가 애용하고 있다. 이 시기 쉐보레는 NASCA나 NHRA 프로스톡 경기에서도 최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특유의 미국적이고 화려한 디자인 덕에 차량 자체의 인기도 좋았다. 세계대전 직후 미국 전역에 흘러 넘쳤던 낙관주의가 그대로 반영된 [[쉐보레 벨 에어|벨 에어]]나 [[쉐보레 임팔라|임팔라]] 같은 명차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차량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영향력도 매우 컸다. 동세대 [[캐딜락]] 차량들과 함께 가장 '미국적인' 디자인의 대표적 예시로 꼽히기도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일렉트로베어1.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일렉트로베어1구조.jpg|width=100%]]}}}|| ||<-2> '''{{{#ffffff 전기차 시제차인 일렉트로베어 (1964)}}}''' || 1960년대에 들어선 환경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던 당시의 추세에 따라 인기 승용차였던 코베어를 바탕으로 한 '''순수전기차'''인 일렉트로베어(Electrovair)를 선보였다. 초기 버전은 450V 아연 배터리와 67kW로 모터를 장착했으며, 후기 버전인 일렉트로베어 II는 532V 아연 배터리와 85kW 모터를 장착해 65~129km의 1회 충전 주행거리[* 한참 뒤에 등장한 [[현대 EV 1호]]보다도 나은 성능을 자랑했으니 이 시기 쉐보레가 기술적으로 얼마나 앞서나갔는지 엿볼 수 있다.]를 선보였다. 1970년대에도 [[보잉]]사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꾸준한 전기차 개발'''에 나섰으며, GM 그룹 차원에선 [[NASA]]의 요청에 따라 [[아폴로 15호]], [[아폴로 16호|16호]], [[아폴로 17호|17호]]의 임무에 사용된 월면차를 제작하기도 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이 찾아오면서는 급속도로 발전한 일본 업체들에게 일부 승용차 수요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으나, 역으로 일본차 업체들이 갖추지 못한 SUV/픽업트럭 시장을 적극 공략해 이 때를 기점으로 미국 시장에서 픽업트럭 만큼은 쉐보레가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져가게 되었다. 구형 [[포드 브롱코|브롱코]]와 함께 미국 남성들의 드림카로 자주 언급되며 마초 이미지로 대표되는 [[쉐보레 K5 블레이저|K5 블레이저]]나 [[쉐보레 C/K|C/K 픽업트럭]]이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차량이다. 1979년엔 쉐보레 브랜드의 총 생산량이 '''1억 대'''를 넘기는 대기록을 세웠다. 다만 모회사인 GM의 경영방식과 특유의 조직 문화로 인해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점차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시기 [[캐딜락]], [[올즈모빌]], [[폰티악]]과 마찬가지로 재무부 위주의 의사결정은 차량의 경쟁력을 되려 떨어뜨렸고, 개발 과정 중 자체 가이드라인을 이상하게 잡다보니 품질도 예전보다 떨어졌다. 더구나 승용차 시장에선 일본차의 영향력이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커져갔고, 쉐보레는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북미 시장에서 SUV와 픽업트럭을 제외하면 꽤 많은 모델들이 쓴소리를 들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아베오해치2003(3).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volt컨셉트카벽돌.jpg|width=100%]]}}}|| ||<-2> '''{{{#ffffff 2000년대 중후반의 쉐보레}}}''' || 다행히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밥 루츠]]를 주도로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신흥국에선 한국의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며 어부지리로 얻게 된 일부 모델을 쉐보레 브랜드로 수출 판매해 수익성을 높였고, 승용 라인업은 디자인과 조립 품질, 주행 성능을 개선해나갔다. 기술 혁신 측면에선 주행거리 연장형 신개념 전기차인 [[쉐보레 볼트|볼트]]를 선보이는 한편, 다양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갖춰 일본 브랜드에 대응하고자 했다. 러시아와 동유럽에서도 생산기반을 확장해나가며 북미 외 다른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다시금 회복했다. 덕분에 당시 GM 내에선 그나마 좋은 성과를 보였고, 2009년 GM 파산 사태를 거치고도 [[폰티악|다른]] [[새턴 코퍼레이션|브랜드]]들과 달리 폐지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후 2010년대엔 본격적인 정상화에 돌입했다. 소형차와 SUV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한편, [[쉐보레 카마로|카마로]]를 비롯해 아이코닉했던 차량들을 다시 부활시켜 브랜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재정립했고, 꾸준한 기술 투자를 이어나갔다. 2011년엔 창립 100년만에 연간 최대 판매량을 기록함과 동시에 브랜드의 총 생산량이 '''2억 1천만대'''를 돌파했으며, 2012년에도 전 세계적인 판매량 증가세를 이어나가 GM이 다시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를 차지하는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17-Chevrolet-BoltEV-012_(1)_(1).jpg|width=100%]]}}} || ||<#cf9835> {{{#ffffff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한 볼트 EV (2016)'''}}} || 2016년엔 당시 대중형 전기차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사용해 경쟁차량 대비 확연하게 긴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보여주는 순수전기차 [[쉐보레 볼트 EV|볼트 EV]]를 선보여 2세대 전기차 시장을 개척, 기술 혁신을 이끌어 나갔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쿼녹스이븨.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실버라도SPCS.jpg|width=100%]]}}}|| ||<-2> '''{{{#ffffff 전동화와 자율주행에 집중하는 쉐보레 (2023)}}}''' || 2020년대부턴 '모두를 위한 전동화'라는 GM 전사 차원의 슬로건 아래 전동화를 가속화 하는 한편, 저렴한 가격을 실현하고 슈퍼크루즈 시스템을 통해 자율주행 기능을 보급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