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식인 (문단 편집) === [[독일]]의 식인 === [[제2차 세계대전]] 때, 동부전선 최악의 격전지였던 [[스탈린그라드]]에서 파울루스의 독일 제6군 역시 식인 행위를 하였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기세 좋던 초반과는 달리 점차 상황이 시가전이라는 지옥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1942년 11월 19일, 그동안 날카롭게 칼을 갈아오던 소련군은 [[천왕성 작전]]을 통해 독일군을 완전히 역포위해 버린다. 소련군이 형성한 포위망 속에는 독일군 30여만 명이 포위되어 있었는데, 안 그래도 서유럽과는 달리 철도망이 조밀하지 않아서 보급에 어려움을 겪던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됨으로서 이 보급로조차 끊겨버리고 만다. 당장 혈로를 찾아 포위망을 뚫어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후퇴의 '후' 자만 들어도 치를 떨던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으며, 참모장교로서의 능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일선 야전부대의 지휘관으로서는 자질이 떨어지는 [[프리드리히 파울루스|파울루스]]는 자신의 6군이 버티면 어떤 꼴이 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 명령을 수행한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공군 총사령관이었던 [[헤르만 괴링|괴링]]이 포위된 6군에게 [[독일 공군|루프트바페]]가 보급을 담당하겠다며 설레발을 쳐댔는데, 히틀러는 이를 철썩같이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당장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된 독일군 30만명이 '하루'를 버티기 위한 '최소'한의 보급량이 500톤 정도였는데, 실제로 투하되는 보급량은 많을 때가 300톤, 적을 때는 채 200톤이 안 될 정도였다. 실제로 스탈린그라드에 이 정도의 보급량을 투하할 능력이 되는 군대는 43~44년을 기점으로 포텐 폭발한 미국 육군항공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할 수 없는 무리한 조건이었다.] 곧 극심한 굶주림이 전 독일군을 덮쳐왔고, 이는 마침 닥쳐온 러시아의 동장군과 맞아떨어져 굶주림과 추위라는 최악의 조합이 완성되었다. 포위된 독일군은 생존하기 위해선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했는데, 전사한 동료의 시체에서 옷을 빼앗는 것는 일상화가 되었고,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처음에는 말을 잡아먹고 그 다음엔 [[고양이]], 그리고 [[쥐]]를 잡아먹다가 마지막에는 인육까지 먹었다. 물론 이쪽은 위에 [[독소전쟁]] 당시 소련처럼 잡아먹진 않았으며, 머리에 총을 대고 [[자살]]해 버린 케이스가 더 많았다고 할 정도로 식인 행위가 그렇게 많이 이루어지진 않았다.[* 독일 6군 생존자들이 정확한 증언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 버려 정확한 진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생존 욕구는 터부에 앞선다는 사실과 28만명으로 편제된 6군 가운데 생존자 6천여명 중 일부가 겨우 증언을 한 것이 때문에 이쪽도 만만찮은 식인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사하거나 동사한 사체는 순식간에 없어졌다. 사람고기를 먹었다는 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 >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中, 리처드 오버리 이 현세에 강림한 지옥의 모습은 독일 6군이 항복함으로써 끝을 맺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