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식인 (문단 편집) ==== 전근대의 식인 ==== [[파일:attachment/f00069574c9e7d4b1f52c.jpg]] [[텐메이 대기근]] 당시 사람 고기를 구워먹는 그림. [[일본]]의 역사에 기록된 것은 기근이 그 원인으로, 16-18세기의 소빙하기의 영향이었다. 특히 [[텐메이 대기근]](1783-1788)으로 불리는 시기에는 농업 경제가 완전 무너져 인육을 먹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흔한 괴담으로 백성들이 먹을 게 없어지자 차마 제 자식을 잡아먹을 수는 없어서 집끼리 서로 아이를 바꿔 삶아먹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웃의 죽은 사람을 나눠먹었다는 소문도 있었다.[[http://blog.daum.net/timur122556/380|관련 블로그]] 다만 일본에서 식인의 흔적은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다. 또한 일본 전국 시대에도 적에게 성이 포위되어 굶주림이 심해지면 인육을 먹었고, 승려가 썩은 시체에서 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다. >'... 왜적은 두 세 살 정도 되는 아이를 납치해다가 머리털을 깎고 배를 가른 후 물에 깨끗이 씻어서 쌀, 술과 함께 제단에 올려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좌우편으로 나위어서서 풍악을 울리고 절을 하였다. 제사가 끝난 후에 그 쌀을 두 손으로 움켜쥐어 나누어 먹고 술을 석 잔씩 마신 다음 그 아이의 시체를 불에 태우는데...' >---- >-고려사 권126, 열전 제39 변안열전 中 다만 이 고려사의 서술은 [[정규군]]의 식인이라기보다는 [[왜구]]들의 [[인신공양]]에 더 가깝다. 단, [[무진전쟁]] 때까지만 해도 막부측의 총 지휘관이었던 마쓰다이라 마사타다(松平正質)가 적병의 볼살을 구워 술안주로 먹었다거나, 사쓰마 번(薩摩藩)의 병사들이 시체에서 간을 꺼내 삶아 먹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다만 일본에서 식인이 불법으로 금지된 것은 메이지 시대 이후의 일이라 전쟁터에서 보급 정도로 생각하고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