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성부대 (문단 편집) == 공적 == 신성부대는 실제로 높은 전투력을 보여주었고 테베도 신성부대를 기반으로 그리스의 패권을 잡아, 신성부대의 명성은 높아졌다. 고르기다스에 의해 창설된 신성부대가 처음으로 전투에 등장한건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오스 2세가 테베를 침공한 기원전 378년으로, 이때 아테네와 연합하여 스파르타를 몰아냈다. 테귀라 전투는 펠로피다스가 무방비 상태인 오르코메누스를 포위하려고 신성 부대와 소규모 기병대를 이끌고 진격하다 스파르타 본국에서 대규모의 증원군이 온다는 소식에 다시 철군하던 중 원래의 오르코메누스 수비대를 만나 벌어진 전투이다. 흔히들 오해하는 것이 스파르타 군대는 전원이 인간병기로 단련된 스파르티아타이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 즈음해서는 정예 병력인 스파르티아타이의 수가 얼마 안 되었고 전쟁의 방식도 페리오이코이 등 일반 병력과 동맹군의 병력으로 전쟁을 운영한 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스파르타군의 수는 부대 단위를 봤을 때 1800명이 아니라 1000명에서 1800명 사이라고 추정한다. 게다가 이것도 정예병이 아니라 보이오티아 도시 오르코메누스를 수비하던 스파르타 수비군이었다. 전투 양상 측면에서도 신성 부대의 용맹성 그 자체보다는 비정상적으로 부대를 운용하여 스파르타의 전선을 깨어버린 게 승인이었다. 테베 군은 종심을 비정상적으로 두텁게 하여 얇은 스파르타 전선을 뚫은 후 양 측면을 기병대와 함께 들이쳐서 스파르타 군은 패주하였다. 테베 군이 추격하였으나 오르코메누스가 가까워 전과는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신성 부대 300명이 스파르타 군 1800명을 전멸시켰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오류이다. 스파르타 군의 구성을 오해하게 한 점, 즉 스파르티아타이가 전멸당했다고 오해하게끔한 왜곡이 있는 점, 사료 부족으로 스파르타 군의 규모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 없는데 근거 없이 1800명으로 확정한 점, 게다가 오르코메누스가 가까워 테베 군이 추적했으나 전과가 제한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스파르타 군이 전멸당했다고 한 점에서 모든 팩트가 틀렸다. 또한 신성 부대가 종심을 뚫은 후 스파르타 수비군에는 없었던 기병대와 함께 측면을 공격한, 뛰어난 전술에 의한 전과를 신성대라는 단일부대가 특별히 용감해서 다수의 인간병기 스파르타 군을 박살낸 양 전투양상을 단순히 도식화해버렸다. 그렇다고 신성부대의 힘이 과장된 것이냐면 그건 아닌 것이, 테베의 신성부대는 테귀라 전투의 한 축이었고 [[레욱트라 전투]]에서도 [[사선대형]]의 가장 취약한 좌익의 끝부분을 틀어막는 역할을 맡아 아군을 지키는 동시에 당시 무적을 자랑하던 --[[스파르타식 교육]] 때문에 사랑의 멋짐을 모르던-- 스파르타 군을 격파하는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약을 과소평가할 수 없는 점이 고대 전쟁은 대형의 어느 한 곳이 무너져 무질서한 상태로 가는 순간 큰 피해를 입거나 수습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것이 사실상 거의 확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휘관의 전략/전술을 정확히 수행하려면 아군 정예가 중요 지점을 지키면서, 상대편이 가하는 맹공을 질서정연히 진형을 유지하며 받아내고 붕괴를 막는 것이 핵심이었다. 맞붙는 과정에 상대편 역시 잘 훈련된 정예부대를 동원해 여기저기를 찌르며 진형붕괴를 노리는 것은 기본이었고, 노려지는 지점의 병사들이 상대방 정예부대의 예봉을 받아내는 강인함과 용기를 갖추지 못했다면 진형이 무너지며 전세가 순식간에 불리해졌다. 그렇기에 잘 훈련된 신성부대가 스파르타의 정예와 맞서 밀리지 않고 진형 붕괴를 막아낸 것 자체는 상당히 훌륭한 공헌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