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쌍룡검 (문단 편집) == 상세 == [[파일:attachment/AKR20100708197800005_01_i.jpg]] 1910년 조선 미술 대관에 실려있는 쌍룡검이라고 흔히 알려진 사진. 다만 이 사진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검을 검집에 넣은 상태라 검에 새겨진 글귀를 확인할 수가 없고 이게 쌍룡검이 맞다는 확실한 설명 또한 전혀 해놓지도 않았으며 원융검기에 묘사된 쌍룡검의 형태와도 전혀 다르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에 수군 최고 지휘관의 신분이었던 만큼 직접 무기를 들고 적과 교전한 사례가 없기에 이순신이 지니고 다닌 무기가 실제 전투에 쓰였는지 의장용인지 구분을 하는건 큰 의미가 없는 일임에도 이상하게 쌍룡검이 실전용 무기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그래서 쌍룡검을 소개할때마다 '이순신이 실전에서 사용했다'는 수식어가 항상 붙어다니지만 이순신이 실전에서 사용한 무기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사실 '''기록이 전혀 없다.''' 이 같은 인식은 현존하는 이순신의 장검이 길이가 2m에 가까워 현대의 검도 및 매체에서의 짧은 도검에만 익숙한 이들이[* 검도에서 사용하는 [[진검]]은 검날 73cm, 자루 27cm로 규격화되어버리는 바람에 여기에 맞아야 실전성 있는 도검이라고 착각하는 잘못된 인식이 생겼다. 심지어 도검업체들이 이순신의 장검마저 여기에 맞춰서 개조해버리는 판국이다.] 막연히 이런 긴 검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지레짐작을 해서 자기들이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여기는 짧은 도검에 집착해서 만들어낸 망상일 뿐이다.[* 육지 전투에선 리치가 긴 창이 진영을 잡고 싸우기엔 최적이었다. 하지만 좁고 진영도 못짜고, 비좁은 선상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서 칼부림을 벌여야하는 선상에선 동양•서양 할거 없이 검이 주력이었다. 당시 일본 주력 전술이 적 배에 갈코리를 걸고 당겨서 올라타 일본도로 싸우는 것이었다. 그나마도 일반적인 [[우치카타나]]로는 너무 길다하여 보다 짧고 가벼운 [[와키자시]]나 그것도 모자라 코다치나 [[탄토]] 등 더욱 짧은칼을 사용하기도 했다. 선상전투에서의 짧은무기 선호는 전세계 해적에게서 나오는 공통된 현상으로, 서양의 해적들 역시 짧은 한손검인 [[커틀러스]]와 단검을 선호했고, 중국 해군은 초창기에 육중한 [[한검]] 형식의 양손검을 썼다가 왜적의 짧은칼에 당하고 난 후로는 마찬가지로 짧은칼이 대세가 되었다. 그러므로 선상전투에서 기존 조선초기식 환도의 짧은 길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오늘날 장군의 권총처럼 당시 지휘관의 검은 휴대가 쉬운 호신용이자 규율을 잡기 위한 무장이었다. 그러니 일반적인 길이의 검은 단순 의장용이 아니라 철저히 실전용이었다.] 더구나 원융검기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쌍룡검은 길이가 1장이 넘는다고 묘사되어 있다. 즉 영조척으로 환산하면 3m가 넘으며 주척으로 환산해도 현재 남아있는 거환도와 길이가 비슷한 장검이다. 쌍룡검이 짧은 [[환도]]라는 인식이 붙은건 쌍룡검이라고 주장하는 흑백 [[사진]]으로 인한 것인데 이 사진에 나온 도검이 쌍룡검이라는 근거는 없고 원융검기에 묘사된 쌍룡검 묘사와 차이가 심하게 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