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파우 (문단 편집) == 역사 == 지명은 먼 옛날 알 파우라는 다일람 선박이 [[대추야자]] 구매를 위해 이라크로 왔다가 이곳에서 강풍을 맞아 침몰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혹은 하구에 위치한 입지에 기인하여 아랍어로 입을 의미하는 파흐에서 유래했다 한다. 후일 (1861년) 전신국을 세운 영국인들이 본국에 Flat Earth Water, 즉 평탄한 물 위의 땅이라 일대를 지칭한 것의 약자인 few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나 신빙성이 낮다. 한때 쿠웨이트의 왕가인 알 사바흐 가문이 오스만 조의 봉신으로 일대를 통치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1834년 [[오스만 제국]]의 요새 겸 항구로 건설되었고,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하기 전까지 유럽에서 인도로 향하는 최단 거리였기에 영국인들이 다수 왕래하였다. 동시에 오스만, 영국, 이란 간의 신경전이 일기도 했다. 20세기 초엽 파우의 인구는 1천 7백에서 5천으로 증가하였다. [[1차 대전]] 시기 파우는 이라크 전역의 첫 전장이었고, 이틀 간의 전투 끝에 영국군이 점령하였다. (1914년 11월 8일) 이후 1948년 2만 5천을 거쳐 1979년에는 7만 5천으로 인구가 급증하였다. 하지만 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1986년 2월 이란군이 점령하고 1988년 4월 이라크 군이 탈환하는 과정에서 도시가 크게 파괴되었다. 전후 1989년 대대적으로 복구되었고, [[사담 후세인]]은 파우 탈환을 기념하며 [[바그다드]] 부근에 알 파우 궁전을 세워 자축하였다. [[이라크 전쟁]] 기에는 2003년 3월 20 ~ 24일까지 무려 5일간 전투가 벌어졌고, 이라크군 150명과 다국적군 19명이 전사한 끝에 점령되었다. 전후에는 10만의 인구가 반감되었다가 2010년대 들어 파우 대항 건설이 진행 중이다. 다만 움카스르가 이미 바스라의 외항으로 자리잡았고 수심이 더 깊어 큰 선박의 정박에 용이하기에 주도권 탈환은 어려워 보인다. 2020년부터 [[대우건설]]이 사업을 수주하여 2038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에 있으며, 1단계로 완성된 14.5km의 부두는 세계 최장의 부두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분류:이라크의 도시]][[분류:이라크-쿠웨이트 관계]][[분류:이란-이라크 관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