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식진 (문단 편집) === [[나비효과]] === 백제의 갑작스러운 멸망으로 인해 양면전선을 강요받아 국력이 급격히 소모당한 고구려까지도 결국 멸망한 것을 생각하면 예식진의 반역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 예식진이 매국노짓을 하지 않았다면 한국사의 방향성은 정반대로 전개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웅진성에서 백제의 저항이 더 길어지면서 백제의 멸망이 더 늦춰졌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백제부흥군이 결국 망한 이유 중 지도부의 분열이 큰 몫을 차지한 것을 볼 때, 의자왕이 왕좌를 지키면서 저항한다면 지도부의 분열 없이 당-신라군을 격퇴하고 후일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그랬듯이 조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백제의 국체를 당에게 다시 인정받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전쟁이 길어지며 결국 당나라 입장에서 반대로 양면전선, 거기다가 [[토번]]까지 합치면 삼면으로 대적하게 되어 엄청난 소모전으로 비화, 고구려 역시 더 오래 존속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오랫동안 고구려의 예속 하에 있던 [[거란]], [[말갈]], [[실위]] 등이 그대로 고구려의 지배권에 붙들려 있어, 차후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가 역사에 등장하지 않게 될 수도 있었다는 부분까지 고려하면 '''동아시아사''' 전체를 뒤흔들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다만 이는 말이 안되는 것이, 고구려가 그때까지 존속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발해도 말갈 관리를 제대로 못한데다 요나라와의 관계가 파탄나는 바람에 200년 만에 망했는데 고구려라고 다를 리 있었겠는가? 특히 예식진의 반역은 한국 민족주의자들이 큰 의미를 부여하는 부여계 직계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한국사에서 뿌리뽑아내버렸다는 면에서 이완용급 혹은 그 이상으로 비난받고 있다. 또한 야마토 정권이 다량의 백제 고구려 유민들을 받아들여 '일본'이란 국가를 형성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면에서 예식진의 반역은 일본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주었다 평가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