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시노야 (문단 편집) === 한국 === 한때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1995년 [[두산]]이 공식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고 요시노야 미국[*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는 없는 닭고기덮밥이 있었다. 메뉴 명칭도 전부 영어로 되어 있었다.]과 기술제휴를 맺어, 1996년 [[강남역]]에 1호점을 연 것이다. 1호점은 당시 뉴욕제과 뒷편에 위치하였으며, 130석 규모의 대형 매장이었다. [[http://news.hankyung.com/article/1996091200651| 돼지고기 덮밥, 소고기 덮밥, 닭고기 덮밥 등의 단품 메뉴는 3~4천원대로,]] 『서울근교 드라이브: 맛있는 집, 전원 카페, 데이트 코스』(1997)를 보면, 요시노야의 주요메뉴 가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 비프볼 3,700원 / 치킨볼 3,500원 / 콤보볼 5,300원[* 덮밥, 샐러드, 음료 등을 포함한 세트메뉴이다.] / 그린샐러드 1,500원 / 아이스티 1,000원 이처럼 3~4천원대의 저렴한 메뉴들을 등에 업고 큰 인기를 끌면서, 1997년 2월 [[신촌]]에 2호점을 열었다. 이와 함께 1997년말까지 전국에 10여 개의 직영점을 추가로 세울 계획을 한다.[[https://www.google.co.kr/amp/s/mnews.joins.com/amparticle/3391343|관련 기사]] 당시 여러 일본외식업체가 국내에 진출중이었고, [[우동]], [[초밥]], [[돈까스]] 등 일본음식전문점들이 1만여 개에 달할 시절인지라, 요시노야의 국내 진출도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1997년 외환 위기]] 직전까지 서울 내에 4개의 체인점[* 이 가운데에는 두산이 프렌차이즈 계약을 맺고 운영하던 라운드테이블 피자가 국내에서 철수하면서 해당 매장을 요시노야 매장으로 변경한 곳도 있다.]이 영업하였으며, 뒤이어 [[샘표]]식품에서도 일본식 덮밥 체인점을 계획하였다.[* 일본 진돈데이와 계약을 맺고 매장을 열 예정이었지만 때마침 외환위기가 불어닥치면서[[페이퍼 플랜|...]] ]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하여 외식산업 자체가 직격탄을 맞게 되면서 상황이 변화한다. 당시 두산그룹은 핵심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 이전에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탓에 두산그룹의 이미지는 안 그래도 좋지 않은 편이었다. 어쨌건 이 두 사건을 계기로 두산그룹은 완전히 건설업과 중공업에만 집중하는 재벌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요시노야도 1순위 정리 대상이 되었다. 외식 인구의 급감으로 인하여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것. 특히나 거의 모든 점포가 번화가에 위치한 대형매장이었던 터라 매장 하나당 7억 원이 넘는 돈이 투입되었고, 이에 따른 적자 문제가 심각했다. 당시 두산 그룹의 부채비율은 600%에 달하여 주력사의 통폐합과 매각이 이루어지던 시기였고, 이는 요시노야도 피해갈 수 없었다. 두산측은 요시노야가 직접 인수하여 경영하지 않는 이상 폐쇄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1998년 4월 7일, 요시노야와 공식 프렌차이즈 계약을 파기하고[* 최초 7년간 계약을 맺었다.] 국내영업점을 폐쇄하였다. 이로써 요시노야는 한국 내에서 공식적으로 철수하게 되어 두산그룹은 식품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즉, 인터넷에 떠도는 것처럼 7000원대의 [[창렬]]한 가격으로 내놓거나 현지화 전략을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망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소문이 완전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00년 출간된 유재은의 『한국시장의 프랜차이즈 전략』에서는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실패 사례로 두산의 요시노야를 거론하면서 다음과 같은 실패 이유를 밝힌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외환위기가 없었더라도 요시노야 매장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단언한다. > 첫째, 외식업의 필수인 맛전략의 실패이다 (중략) 예를 들어 규동이 일본맛 그대로 들여온다면, 일본 음식전문점의 한가지 메뉴로서 들어오면 모를까 그 아이템이 매출의 주류를 이루는 대중화된 외식매장으로는 접근이 어렵다는 얘기다. 일본맛을 버리고 한국식 불고기맛으로 바뀌었어야 했는데 다른 나라의 성공만 믿고 음식의 개성이 매우 강한 한국에 그대로 도입한 것이 시행착오였다고 보아진다. > 둘째, 가격전략의 실패이다. (중략) 겉보기에는 3,000원 내외는 저렴한 가격이지만 여기에 한국인 식사의 기본인 국과 김치를 따로 사서 먹어야 하는 시스템이라 결국 4,000~5,000원을 주어야 하는데, 90년대 후반 IMF 당시로서는 중고가의 가격대를 형성하게 된다. > 셋째, 주문식단제의 실패이다. (중략) 일일이 김치 하나에 돈을 내고 국물 하나에 돈을 내야 하는 것을 귀찮게 여기고 인심 고약한 불편함으로 여기는 우리의 정서와 일본인 정서와는 매우 다른 것이다. 이와 같이 3가지 주요 요인 때문에 두산의 요시노야 프랜차이즈 사업이 실패를 가져왔다고 본다. 상기 분석은 두산이 요시노야와 프랜차이지를 계약할 당시, "일본식 그대로 한국에 판매하려고 한다는 우려"에 대해서 두산 측이 "이미 대만 등 외국에서 성공을 거둔 업체로서 일본맛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기사"를 근거로 하고 있다. 즉 제대로 된 현지화 전략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산상사가 요시노야 매장을 폐쇄하기 직전까지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8050770466 | 점포당 하루 평균 4백명의 고객을 유지했다.]] 게다가[[http://m.hankookilbo.com/news/read/199701290074389341|일본음식이 한국인의 입맛을 점령한다는 우려]]가 있을 정도였다. 이는 당시 한국의 소비자들이 요시노야를 외면하지 않았으며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애초에 두산상사가 요시노야와 계약을 한 것도 값싸고 빠르다는 점 때문이었고, 20~30대의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박리다매로 수익을 올리기 위하여 대형 매장을 고집했다. 그렇기에 1호점을 강남역에 열었고, '부담없는 가격'과 '1분 내에 메뉴가 제공되는 "전문" [[패스트푸드]]점'을 표방했다. 아울러 매장별 음식과 서비스 질을 균질하게 맞추기 위해서 가맹점을 모집하지 않고 직영점 정책을 고수했다. 추후 20~30여 개의 직영점이 생기면 가맹점 체제로 변경할 예정이었는데, 20~30개의 매장이 들어서면 안정적인 운영과 적절한 수익이 들어올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산은 해외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무턱대고 대중화를 하려던 것이 아니라, 전문화를 먼저 꾀하여 인지도를 올린 다음에 본격적으로 대중화를 할 작정이었다. 결국 메뉴나 가격보다는 오히려 대형 매장 중심의 직영점 정책이 외환위기 이후 수익을 크게 악화시켰고, 그것이 바로 요시노야의 한국 철수를 가져왔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물론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한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두산에서 운영했던 [[KFC]] 보다 수익은 낮았어도 매장당 일 평균 200만 원은 벌었다. 그리고 당시 두산은 요시노야 일본 본사와 기술 제휴를 한 것이 아니라, 요시노야 미국과 기술제휴를 맺었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는 없는 닭고기 덮밥이 존재했다. 즉, 일본인 입맛을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미국화된 형태를 국내에 제공했다. 결국 이것이 두산그룹의 마지막 식품 사업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