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불교 (문단 편집) == [[불교]]와의 차이 == >한 제자 여쭙기를 "불상 숭배와 일원상 숭배의 다른 점은 어떠하옵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불상 숭배는 부처님의 인격에 국한하여 후래 제자로서 그 부처님을 추모 존숭하는 데에 뜻이 있을 뿐이나, 일원상 숭배는 그 뜻이 실로 넓고 크나니, 부처님의 인격만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는 것보다 우주 만유 전체를 다 부처님으로 모시고 신앙하여 모든 죄복과 고락의 근본을 우주 만유 전체 가운데에 구하게 되며, 또는 이를 직접 수행의 표본으로 하여 일원상과 같이 원만한 인격을 양성하자는 것이니, 그 다른 점이 대개 이러하나니라." >---- >대종경 교의품(敎義品) 12장 "불교와 무엇이 다른가?" 라는 질문은 원불교 교도들이 자주 듣는 질문이다. 원불교는 '불법(佛法)의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를 표방한다. [[불교]]에도 여러 종파가 있고 각각의 차이가 있으므로 다음 중 일부는 원불교만의 특징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있으나 가장 일반적인 전통적 불교와 차이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 {{{+1 '''핵심 사상'''}}} 원불교는 기본적으로 삶을 [[은혜]]로, 불교는 삶을 [[고통]]으로서 바라본다. 원불교는 삼학, 팔조, 사은, 사요 등 피은의 복이 있고 배은을 하면 고통이 따른다고 보며 법신불 일원상을 부처님의 마음, 진리의 길잡이로서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불교는 삶은 기본적으로 고통이 전제 되어있기에 고통을 제거하는 수행을 해야한다고 본다. 즉, 기본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는 같지만, 원불교는 삶을 기본적으로 [[은혜]], 불교는 기본적으로 [[고통]]으로 전제함으로써 차이가 있는 것. * {{{+1 '''원불교의 교당 위치와 건축양식'''}}} 소태산 대종사는 기존 불교 사찰들이 산 속에 들어가 현실 사람들과 분리되어 있는 것을 비판하였고[* 사실 오래된 큰 사찰이 거의 산 속에 있는 건 불교계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기보단 조선왕조의 [[숭유억불]] 정책 때문에 강제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물론 조선이 망하고 그런 제한이 사라진 지금도 불교 주요 사찰은 산사가 많은 건 원불교 입장에선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원불교의 교당은 도심과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정해진 건축양식은 없고 일반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 당대의 현대적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원불교 원남교당|원남교당]]의 경우 현대적 양식으로 중건된 것이 대표적. 하지만 [[원불교 중앙총부]]에는 교단 초창기인 일제강점기 건축 양식대로 지어 아직 남아있는 건축물이 근대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있어 창건 당시 양식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사실 불교 사찰도 시대에 따라 건축양식이 달라지기는 했다. 조선시대 이후 사찰이 [[한옥]]의 형태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을 뿐이다. 요즘은 불교에서도 산중 불교의 문제점을 인식하여 '포교당'이나 '기도도량 XX선원' 등의 이름으로 도심에 진출해 있기도 하다. * {{{+1 '''교역자의 명칭 및 예복'''}}} 불교에서는 [[승려]]라고 하는 것과 달리 원불교는 [[교무]] 또는 전무출신이라 부른다. 복장 역시 승려와 많이 다르며 머리를 강제로 삭발하지 않는다.[* 최고지도자인 종법사의 경우에는 삭발을 하는 것이 관습화 되어있다.] 그리고 원불교의 예복이 따로 제정되어 입고 있다. 남성 교무의 경우 셔츠의 깃이 일반 셔츠와 달리 한복의 당코깃을 응용한 정장셔츠 형태를 갖췄다. 여성 교무의 경우 저고리와 치마 형태다. * {{{+1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원불교의 교조는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이며, 소태산 박중빈은 창립 이후 여러 종교의 경전을 열람해보다 [[금강경]]을 읽고 석가모니 부처에 연원을 대었다. 따라서 석가모니불은 원불교의 연원불이기도 하다.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 종사는 대종사와 부처의 관계를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내가 있게 한 근원이지만, 아버지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고 이야기하였다. * {{{+1 '''원불교의 핵심 교리'''}}} 삼학, 팔조, 사은, 사요 등 원불교의 핵심 교리는 소태산 대종사가 생전에 직접 감독, 편찬한 것이다. 반면에 기성 종교들의 경전들은 창시자의 가르침이 구전 형태로 내려오다가 후대에 기록된 것이다. * {{{+1 '''원불교의 교전'''}}} 원불교의 자체 경전인 [[원불교 교전]]이 있다. [[원불교 전서]]에 교전 외에 [[반야심경]], [[금강경]], 수심결 등 불경이 담긴 불조요경도 있으나 핵심은 소태산 대종사가 생전에 직접 참관하여 편찬한 [[정전(원불교)|정전]]과 제자들이 기록했던 대종사의 말씀을 모은 [[대종경]]이다. * {{{+1 '''출가자와 재가자의 차별 여부'''}}} 불교는 모든 것이 출가자(승려) 위주로 되어있으나 원불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출가자와 재가자의 차별이 없고 그냥 맡은 역할의 차이라고 본다. 소태산 대종사는 기존의 불교는 모든 제도가 출가 생활하는 승려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어 세간 생활하는 일반 사람들에게 맞지 않고 세간 생활하는 신자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손님과 같이 되었으므로 일반 신자는 출가하여 공부하는 승려처럼 부처의 직통 제자로나 불가의 조상으로 들어가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아무리 불법이 좋다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부처의 은혜를 입기 어렵다고 보았다. 계문에 있어서도 출가수행자에게 수백가지 계문이 주어지는 불교에 비해 원불교의 계문은 재가 출가 구별없이 최대 30가지다. 처음 입문하면 10가지를 지키고, 이후 수행 정도(법위등급)에 따라 등급 당 10가지씩 누적되어 20가지, 30가지로 점점 올라간다. 육식 등에도 부정한 방법으로의 취식, 예를 들어 단순히 고기가 땡긴다는 이유로 기르던 동물을 잡아먹거나 직접 사냥에 나서는 등의 행위가 아니라면 출가자에게도 큰 제약이 없다. * {{{+1 '''원불교의 양성평등'''}}} 소태산 대종사는 초창기부터 남녀 권리 동일을 얘기하였고 이것은 1910, 20년대 당시에 굉장한 파격이었다. 그래서 대종사 생전에도 여성 제자들이 전국 각 교당을 이끄는 책임자로도 많이 파견되었으며 중요한 역할들을 많이 했다. 여성의 교육이 많이 제한되었던 옛날에 원불교에 가면 여자도 공부시켜준다더라 하여 입교한 여성들도 많았으며 이 때문인지 원로 교무들은 여성이 더 많다. 지금도 원불교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위단회는 남녀 동수로 구성되고 재가 교도도 참여한다. [[종법사]]는 계속 남성이었지만 규정에 있거나 암묵의 룰 등인 것도 아니다. 원불교의 행정 수반(최고담당자)인 교정원장과 사법 수반인 감찰원장이 모두 여성교무였던 적도 있으며, 여성 종법사가 선출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 {{{+1 '''교무의 결혼 허용'''}}} 불교는 [[조계종]] 기준으로 비구승에겐 결혼이 엄격하게 금지되며, 타 종파에 있는 대처승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던 사람에 한해서만 허용된다. 그러나 원불교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정남정녀 선서를 한 교무를 제외하면 교무도 결혼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여성 교무는 독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오랫동안 관습법이었는데 사실 대종사는 결혼은 각자의 자유에 맡긴다고 하였다. 그러나 남녀차별이 심했던 시대에는 이 관습법이 여성 교무에게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남녀차별이 심한 전근대 사회에서는 보통 아내의 종교는 남편의 것을 따르는 게 불문율이고, 남편과 시가의 반대로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여성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아예 금혼을 내세워서 여성 교무들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려 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이러한 여성 보호를 위한 금혼 규정은 옛날 [[이화학당]]에도 존재했는데, '결혼하면 퇴학당하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결혼할 수 없다'는 이유를 제공해줌으로써 어린 소녀들을 [[조혼]]과 강제결혼으로부터 보호하고자 생겨난 제도였다. 물론 이 규정은 현대 한국 사회에는 더 이상 맞지 않아서 2003년 [[이화여자대학교]]는 금혼 학칙을 폐지하였다. 원불교에서도 예전부터 결혼금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있었고 2019년에 여성 교무의 정녀 의무가 폐지되었다. * {{{+1 '''원불교의 상징'''}}} 불교의 사찰에서는 [[불상]]을 모시며, 하다못해 [[탱화]]라도 모신다. 그러나 원불교 교당에서는 불상을 모시지 않는 대신 부처의 깨달음과 우주 만유의 본원을 상징하는 법신불 일원상을 모신다. 그 외에 보통은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사진도 측면 벽에 걸어놓긴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 {{{+1 '''원불교의 삼학공부'''}}} 불교는 경전 중심, 수행 중심 등의 강조사항에 따라 여러 종파가 생겼지만, 원불교는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의 삼학공부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잡을 것을 강조하며 하나의 교단으로 유지해왔다. 그래서 원불교는 신종교들 중 창설 이래 어떤 이유로도 분열된 적이 한 번도 없는 매우 드문 종교이다. * {{{+1 '''원불교의 연호'''}}} 불교의 연호인 '불기' 대신 원불교의 자체 연호인 '원기'를 사용한다.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1916년이 원기 원년(원기 1년)이 된다. 20[age(2000-01-01)]년은 원기 [age(1915-01-01)]년이다. * {{{+1 '''원불교 교무님들의 활발한 사회 참여'''}}} 소태산 대종사도 세상과 동떨어진 기존 불교를 비판하였고, 원불교는 교세 대비 매우 많은 수의 교육, 복지 재단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무의 사회 참여가 매우 활발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