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춘추전국시대) (문단 편집) === [[초한쟁패기]] === [[시황제]] 때까지 위군(衛君)의 명맥은 이어졌으나, [[이세황제|호해]] 때인 기원전 209년에 마지막 위군 각의 식읍을 몰수하여 위군이란 직함마저 사라졌다.--사필귀정?--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어난 때가 기원전 209년 '''7월'''인데, 위군 각이 폐위된 때는 기원전 209년 '''9월'''이다. 참고로, 같은 달에 항량과 유방이 처음 일어났다. 이 시점에서 다시 일어난 나라(그 나라의 임금을 칭한 자가 있는 나라, 장초 제외)는 조, 제, 연, 위(魏), 그리고 사실상 초(항량)까지 있으니 6국이 사실상 부활한 상태로 진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마도 주나라의 후손이니 6국 반란과 더불어 정통성을 내세우는 자가 이용할지도 몰라 없앤 듯하다.[* 비슷한 사례로 [[신라]] [[문무왕]]은 고구려, 백제, 당나라를 물리친 삼국통일 이후에도 고구려 왕족 [[안승]]의 작은 [[보덕국]]을 일부러 남겨두고 신라 왕족과의 국혼까지 치러주었지만, 아들 [[신문왕]]이 보기엔 이게 구시대의 잔재였는지 즉위 후 얼마 안 가 제거한다.] 이 시기에 당장 [[초의제]], [[조헐]]처럼 단지 정통성 때문에 옹립된 케이스가 있기도 하다. [[위만]]은 이 나라와는 무관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