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영철 (문단 편집) === 범행 일지 === [[2003년]] [[9월 11일]] 전주교도소를 출소한 유영철은 13일 후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강남구)|신사동]]에서 [[숙명여자대학교]] 이모 교수와 부인을 살해했다.[* 이때부터 [[정두영]] 등 일반적 강도 살인범과 전혀 다른 행태를 보였는데, 재물에는 손을 안 대고 사람만 죽였다는 점이다. 즉 살인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이야기.] 이 사건 이후 [[2004년]] [[7월]]까지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층 노인 또는 출장 마사지사 여성 등 총 16건의 범행으로 2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살인 수법도 매우 악질적으로 진화해, 피해자를 굉장히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하였다. 살인 행각에 빠지기 이전에는 각종 절도나 금품 갈취를 했었는데, 그 중 한 사건은 위조한 경찰수첩으로 경찰을 사칭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업종(위에 말한 출장 마사지라든가)의 사람들로부터 금전을 뜯기도 했다. 살인을 시작한 후 단순 절도로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었는데,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위조 경찰수첩이 들통나면 조사가 철저해져 연쇄살인범이라는 게 들통나 [[사형]]당할 거라 생각, 경찰서 2층에서 뛰어내려 도주를 시도하는 등 별 기행을 했다고. 살인을 본격적으로 저지르기 전에 이러한 각종 절도 전과로 구속된 적이 있었는데, [[본인]]은 한 [[목사]]와의 인연으로 [[십자가]]를 지니고 있는 등 종교에 귀의하려 했으나 결국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러자 선처를 바랐는데 그게 안 되니, '신도 있는 놈의 편'이라고 생각해 [[반종교]]적으로 돌변했다.[* 법정에서 소지하고 있던 [[십자가]] [[목걸이]]를 부쉈다. 그런데 이 논리가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데, 절도죄의 법정형은 6년 이하 징역이다. 아무리 [[대한민국]] 법이 솜방망이라도 상습절도범이 징역 10개월이면 많이 선처받은 셈.][* 사실 대부분 범죄자의 사고방식이 이렇다. 교도소에 들어온 사람들 절대다수가 자기가 저지른 죄에 비해 자기가 받은 형량이 가혹하다며 억울해하고, [[적반하장|자신을 이렇게 감옥에 들어오게 한 사람들을 되려 원망하는]] 억하심정을 내비친다는 증언들이 찾아보면 꽤 많다. 애초에 "잘못했으면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자신에게도 공평하게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자제심이 많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사람이었다면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연쇄살인]]의 전반부인 일련의 부유층 살해사건에서 상당수의 피해자 거주지가 [[교회]] 인근에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그의 범행 일지. [[https://www.koreascience.or.kr/article/JAKO200713663903492.pdf|참고자료]] * [[2003년]] [[9월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강남구)|신사동]]에서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이모 씨(72세)와 부인 이모 씨(67세)를 둔기로 살해. 살인 후 유영철은 지문이나 발자국이 묻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을 치밀하게 닦은 다음, 현관문 잠금 장치를 한 뒤 대문으로 빠져나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잭나이프를 두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시 담을 넘어 들어간 뒤 잠긴 현관문을 발로 차서 문고리를 부수고 잭나이프를 찾아 나왔다. * 2003년 [[10월 9일]], [[종로구]] [[구기동]]에서 주차 관리원 고모 씨(61세)의 집에 침입해 고 씨의 [[아내]](60세), [[어머니]] 강모 씨(85세)와 고 씨의 [[아들]](35세, [[지체장애]])을 둔기로 34회를 강타해 살해했다. 특히나 고 씨의 아들이 2층에서 내려오자, 그의 목에 잭나이프를 들이대고 2층 복도로 끌고 올라와 해머로 머리를 내리쳐 쓰러뜨린 후 두개골이 부서져 뇌가 빠져 나올 정도로 머리를 수 차례 내리치는 잔인성을 보였다. * 2003년 [[10월 16일]] [[강남구]] [[삼성동(강남구)|삼성동]] 2층 단독주택에 침입해 최모 씨(70세)의 부인 유모 씨(69세)를 둔기로 살해. 부부의 [[아들]]이 집에 들어왔을 때 유 씨가 자신의 단독주택 화장실 바닥에서 피를 잔뜩 흘린 채 의식을 잃어가며 신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였다.[* ([[조선일보]], [[2003년]] [[10월 17일]])] 현장감식 결과, 같은 발자국이 안방과 거실, 화장실에서도 발견되었고, [[구기동]] 사건 족적과 비교해보니, 일치했다. 이 때부터 언론은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기 시작했고, "경찰이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한 채 엉뚱하게 피해자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수사 대상으로 삼아 괴롭힌다"고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조선일보]] [[2003년]] [[10월 17일|10월 17일자]]] 경찰은 피해자가 노인이라는 점, 묵직한 둔기, 잔인한 범행수법 등을 통해 동일범 소행이라는 의견을 내놓았으나, [[신사동(강남구)|신사동]]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머리에 난 상처 깊이가 4~5㎝ 쯤이고 폭이 넓다는 점, 피해자 중 1명인 이모 씨(67세)의 목에는 깊이 2.5㎝의 자상도 있는 것과는 달리, 삼성동 사건 피해자의 상처는 길이 3㎝ 안팎의 1자형이고, 다소 가볍고 긴 형태의 둔기에 맞은 것으로 보고, 살인도구가 다르다는 점을 들어 동일범이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 2003년 [[11월 18일]] [[종로구]] [[혜화동]]의 2층 단독주택에 침입해 집주인 김모 씨(87세, 남)와 파출부 배모 씨(53세, 여)를 둔기로 살해. 증거 인멸을 위해 금고에 불을 지름. 현장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증손자가 이불에 둘러싸여 질식 직전까지 갔으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피해자 집주변을 수색하던 경찰은 인근 건물 입구에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녹화된 테이프를 제출받아 분석했고, 자신의 상의에 피가 튀어 이를 감추기 위해 피해자 집 옷장에 걸려 있던 점퍼를 입은 채 걸어 내려가는 범인의 뒷모습이 찍힌 화면을 찾아낼 수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영상분석실에서 분석한 결과, 범인의 키가 168cm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경찰은 CCTV 화면에 찍힌 뒷모습과 168cm의 키, 20~30대 후반의 남자, 그리고 족적 검색을 바탕으로 [[금강제화]] 버팔로 캐주얼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을 찾는다는 수배 전단을 전국에 배포했다. * [[2004년]] [[4월 14일]] [[서울 중구]] [[황학동]]의 도깨비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안모 씨(44세, 남)를 안 씨의 [[기아 베스타|베스타]] 승합차로 유인해 살해. 유영철은 2004년 [[4월 13일]] 밤, [[동대문구]] 황학동 삼영빌딩 1층 백성프라자약국 앞에서 [[비아그라]]와 음란 CD를 판매하는 피해자의 동태를 살피다가 영업을 끝내고 남은 물건들을 들고 자신의 베스타 승합차 쪽으로 가는 피해자에게 다가갔다. 위조한 [[서울지방경찰청장]] 명의의 경찰관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음비법위반, [[약사법]]위반으로 적발하겠다.”라고 하면서 피해자의 두 손목에 수갑을 채워 승합차 조수석에 태웠다. 승합차를 운전해 가던 중 피해자가 유영철의 신분을 의심하는 태도를 보이자, 피해자를 살려 두었다가는 그간의 살인행각과 경찰관 사칭 행각이 드러날 것을 염려하여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결정하였다. 유영철은 수갑을 채워 피해자를 저항하기 어렵게 만든 다음, 코팅 장갑을 낀 손으로 잭나이프를 들고 피해자의 얼굴과 머리, 목 등을 마구 찔렀다. 피해자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여, 피해자를 뒷좌석 밑에 가로방향으로 눕혀 놓고 옷가지로 덮으려고 하였으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피해자가 피고인을 향해 발길질을 하며 저항하자, 다시 잭나이프로 피해자의 허벅지 등을 찌르고 가방에서 꺼내든 해머로 피해자의 머리를 수 회 내려쳐, 피해자는 두부손상으로 사망하였다. 잭나이프로 피해자를 찌르는 과정에서 실수로 베인 오른쪽 손등 상처의 피가 승합차 안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피를 없애버리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에서 승합차에 불을 지르기로 마음먹었고, 사체에 옷가지와 신문지를 덮어놓고 승합차를 운전하여 다시 자신의 오피스텔에 도착하여 몸에 묻은 피해자의 혈흔 등을 닦고 옷을 갈아입은 후, 승합차를 운전하였다. 다음날 새벽 1시에 [[인천]] [[중구(인천광역시)|중구]] 북성동 소재 삼호석유 주차장에 도착하여 연쇄폭발을 유발하기 위해 2대씩 주차된 유조차량 사이에 위 승합차를 주차시켜 놓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수갑에 묶인 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직전 피고인에게 저항하기 위해 심한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두 손목에 선명하게 난 수갑자국을 없애버리는 한편, 피해자의 신원도 확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잭나이프로 두 손목을 절단하여 이를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리고 승합차 안에 있던 신문지와 옷가지를 사체 위에 올려놓고 승합차 안에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여 그 불길이 피해자의 사체 및 승합차에 옮겨 붙게 하였다. 이어, 위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두 손목을 그 곳으로부터 약 300m 떨어진 [[월미도]] 횟집상가 앞 [[방파제]] 바위틈에 버렸다. 피해자의 시신은 월미도에서 기름탱크에 담겨 불태워졌고, 뒤늦게 유족들이 겨우 몇 점을 수거하여 장례를 치렀다. 그는 평소 [[노점상]] 단속 때문에 [[경찰서]]를 자주 들락거렸기 때문에 유영철의 경찰 신분증이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아보았고, 그 점이 유영철을 자극해 살해당하고 말았다.[[https://shindonga.donga.com/3/all/13/103715/1|#]] 피해자는 4형제 중 장남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사건 이후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다고 한다. 그의 피살 7개월 후에 둘째 남동생이 충격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 둘째 남동생은 동거 중인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녀 역시 애인의 자살 이후 얼마 안 가 뒤따라 자살했다고 한다. 다시 8개월 후 막내 남동생도 자살로 생을 마쳤다. [[마지막 생존자]]인 셋째 남동생도 자살을 시도했으나, 구사일생하여 현재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며 겨우 살아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339243|연쇄살인 피해자 유가족이라는 게 알려지자 알던 사람들이 모두 그를 멀리하고 떠나가면서 사회적 고립까지 얻었다고 한다.]] 피해자의 아내는 현장검증 현장에서 너무나 태연한 유영철의 모습에 울부짖다가 실신하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자식들과 함께 아예 잠적해버렸고, 연락이 아예 끊겨 서로 안부는 물론 생사조차 모른다고. * 2004년 [[3월]]부터 [[7월]]까지 [[마포구]] [[신수동]] 오피스텔에서 1명,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오피스텔[* 사건 당시 그 지역에서는 해당 장소가 악명 높아졌었는데, 현재 [[신촌역(도시철도)|신촌역]] 7, 8번 출구나 [[서강대역]] 기준 2번 출구 쪽에서 이동하면 나오는 부근 지역이었다. 상가나 오피스텔 등 작은 건물들이 골목 따라 쭉 섞여 있던 지역(사실상 시장 비스름한 곳)에 있던 곳 중에서도 끝 쪽 구석 깊은 곳에 있던 곳이다. [[2010년대]] 들어, 계속 그 지역 근처 대부분 건물들이 싹 밀리고 재개발되면서 현재는 사라졌고, 새 길이 생기며 그에 맞게 새 건물들이 건축되어 정확한 건물터조차 찾을 수 없다. 기존에는 신촌역 외에 가까운 역이 없어서 '신촌 쪽이다'라고만 소문이 났었는데, 거리가 먼 건 아니지만,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는 신촌역에서 거기로 가는 길이 오래된 건물들로 어느 정도 막혀 있던 곳이라 돌아서 가야 하거나, 직선거리에 가깝게 걸으려면 좁은 골목을 꽤 지나가야 했기에 가까운 느낌이 들 만한 곳은 아니었다. 현재는 건물들을 많이 헐어버리고 길이 생길 만큼 다 뚫어버렸다.][* 당시 유영철이 거주하던 같은 오피스텔에 살던 어떤 사람은, 밤에 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고 한다. 그리고 건물 주인이 '이번 달은 유난히 수도요금이 많이 부과되었다'고 의심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는 시신을 토막내는 소리였고, 수도요금이 많이 나온 이유는 시신을 토막낼 때 물을 많이 소비했기 때문인데, 당시만 해도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유영철이 체포되었을 때 TV에서 자신이 거주하던 오피스텔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모터 소리와 과다한 수도 요금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에서 전화방 도우미와 마사지 도우미 등 여성들을 불러들여 '''총 11명'''을 살해하고 시체를 토막내었다. 그는 토막낸 시신을 10개의 검정 비닐로 분리해 싸고 4개의 큰 검정비닐에 나눠 담은 뒤 택시를 이용해 운반하여 1구는 마포구 [[대흥동(서울)|대흥동]] [[서강대학교]] 도서관 뒷산 등산로 나무 밑에, 10구는 [[서대문구]] [[봉원동]] [[봉원사]] 주변 한방병원 신축공사장 주변에 암매장하였다. 유영철은 전화로 여성들을 불러 길거리나 여관에서 만난 뒤, 컴퓨터 스캐너 장비와 컬 러프린터기를 이용하여 [[서울지방경찰청장]] 명의의 위조 경찰관 신분증과 [[남대문시장]]에서 구입한 수갑을 보여주어 경찰관을 [[사칭]]하여 함께 자신의 오피스텔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간 유영철은 여성들에게 샤워를 하게 한 후 욕실로 들어가서 해머로 머리를 가격하여 기절시킨 후, [[거버]] 사의 나이프로 목을 자른 후 욕실에서 시신을 15~18개로 토막을 냈다. 특히 유영철은 "자른 머리의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묶어 벽면에 달린 휴지걸이에 매달아 놓아 피를 다 빼냈다"고 진술해 충격을 주었다. 시신을 토막낼 때 소리가 날까봐 물을 틀어서 물소리가 나게 했다. 또한 [[반젤리스]]의 라는 노래[* 제목을 모르는 사람들도 멜로디만 들으면 많이 들어본 노래일 것이다. 영화 <[[1492 콜럼버스]]>의 OST이며, 주로 항해하는 장면 등이 나올 때 BGM으로 많이 사용된다. 굉장히 멋있고 웅장한 노래인데 이런 노래를 틀고 사체훼손을 했다는 점에서 유영철이 자신의 범행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얼마나 영웅시하는지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를 틀어놓고 사체를 잘랐다.[* ([[조선일보]], [[2004년]] [[9월 20일]])] 처음에는 쇠톱을 이용하였고 시간도 많이 걸렸으나, 차츰 능숙해져 칼만 가지고도 토막을 내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또한 혹시라도 DNA 검사로 자신의 신원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11명의 피해 여성들 중 단 한 명과 [[성관계]]를 맺었을 뿐, 나머지는 즉시 살해하였으며,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관계를 맺은 피해여성의 손가락 지문을 모두 칼로 벗겨내어 화장실 변기에 버리는 치밀함을 보였다. 토막 낸 시신을 검정비닐로 싸는 과정에서 자신의 지문이 남을까봐 시신을 땅에 묻은 뒤에 비닐봉지를 모두 회수하였다. 유영철은 일반적인 [[연쇄살인범]]들이 보이는 피해자의 공포나 경악스러운 감정을 보고 싶어하거나 피해자가 자신에게 동정과 자비를 갈구하는 행동을 즐기지 않고 순식간에 피해자들을 즉사시켰다. 하지만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사체에 대한 모욕이나 절단 등의 엽기적인 행동을 했는데, '''시체의 [[뇌수]]를 믹서에 갈아 먹는 등의 식인 행위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간과 [[자궁]], [[음부]] 등을 잘라내는 등의 시체훼손을 저질렀다.''' 유영철은 피해자를 죽인 순간을 회상하기 위해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장소에 사체를 토막내어 암매장하였고 피해자가 차고 있던 팔찌를 전리품으로 가지기도 했는데, 프로파일러들은 이러한 유영철의 행동을 "연쇄살인범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회상기"라고 분석했다. 모든 살인과 살인 간 일정한 냉각기간을 가진 뒤 침체기가 끝나면 살인을 반복하였는데, 특히 직업여성 계획 살인에서는 냉각기간의 간격이 매우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범행 수법이 점차 숙달되어 가고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3월 16일]] 전화방 도우미 23세 여성을 두 손으로 목 졸라 살해. 시신은 [[서강대학교]] 뒷산에 암매장하였다. * [[4월|4]]~[[5월]] 전화방 도우미 성명불상(20~30대) 여성 살해. 이 사건부터 살해하는 데 둔기를 썼고, 암매장 장소도 [[서강대학교]] 뒷산에서 [[봉원사]] 근처 산으로 바꾸었다. * [[5월]] [[PC방]]에서 조건만남 쪽지를 보내고 있던 25세 여성을 보고, 위조 경찰증을 들이밀어 윤락 행위를 단속한다며 경찰 행세를 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다음 살해. * [[6월 2일]] 전화방 도우미 35세 여성 살해. * [[6월]] 전화방 도우미 성명불상(20대 후반) 여성 살해. * [[6월 9일]] 출장 마사지사 26세 여성 살해. * [[6월 18일]] 전화방 도우미 27세 여성 살해. 사실 유영철은 같은 업소의 다른 여성을 불렀는데, 피해자가 대신 유영철을 찾아오는 바람에 살해당하고 만다. * [[6월 25일]] 출장 마사지사 28세 여성 살해. * [[7월 2일]] 출장 마사지사 26세 여성 살해. 피해자의 이름이 유영철과 사귀고 동거하다 헤어진 여성과 같다는 이유로 살해하고 나서도 시신을 마구 훼손했다. * [[7월 9일]] 출장 마사지사 24세 여성 살해. * [[7월 13일]] 출장 마사지사 27세 여성 살해. * ~~[[2004년]] [[5월]] [[종로구]] 5층 건물주 주인 살해~~ 일단 공식적으로 밝혀진 건 아니지만 정황상 유영철의 소행이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실제로 초기 자백이나 해당 범죄 이후의 정황과 맞물리는 상황도 꽤 있었지만, 진술이 번복되고 당시 담당하던 경찰이 서둘러 수사를 종결했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재수사하지 않는 한 어디까지나 심증이므로 취소선 처리. 아니면 아래 [[이문동]]처럼 일종의 공권력 이용 목적 또는 사형 선고가 내려질 때까지[* 일단 여죄를 자백하면 그 여죄를 또 수사하느라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시간을 벌기 위한 거짓 자백일 수도 있다. 자세한 것은 《[[그것이 알고싶다]]》 [[그것이 알고싶다/2016년 방영 목록#1038|1038회]] 참조. [[파일:유영철그림.jpg]] 유영철이 직접 그린 토막살인 과정. 유영철은 피해 여성 11명을 죽인 뒤 시체를 18조각으로 나누어 유기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