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종범 (문단 편집) === 아들 [[이정후]] 관련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가족 관계, rd1=이종범/여담, paragraph1=4.2)] >정후야, 아빠는 지금 인천 원정경기를 끝내고 버스 안에 있단다. 광주에는 새벽에나 도착하겠구나. 아마도 자고 있겠지. 원정 떠나기 전에 “엄마 말 잘 듣고 동생하고 잘 지내” 하고 당부했었는데 잘 했으리라 믿어. > >초등학교 3학년 때 네가 처음 야구 선수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빠가 많이 반대했지? 아빠는 네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하면 할수록 어렵고 힘든 야구를 한다는 게 썩 내키지가 않았단다. 더군다나 야구인 2세로 네가 앞으로 가질 부담감이 걱정도 되었단다.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거니까, 정말 좋아하는 거니까 막지 않았단다. 지금은 네가 경기에 나가서 상을 타거나 좋은 성적을 내면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곤 한단다. 너는 자랑스러운 내 아들이니까. > >지난 3월에 스프링캠프 끝나고 같이 목욕탕에 갔었지? 그때 우리 정후 보고 많이 놀랐단다. 중학교 1학년인데도 키가 165㎝ 가까이 되고 몸도 이제 제법 커졌더구나. 아빠가 일본에서 활약할 때 관중석에 앉아 열심히 응원하던 꼬마 정후는 이제 어디에도 없더라. 체격만 봐서는 아빠보다 더 야구를 잘할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해. > >한달 전에 네가 운동장에서 야구 하는 모습을 봤어. 제법 하던걸. 앞으로 기본기만 더 잘 익히면 되겠더라. 감독님 말씀 잘 듣기를 바랄게. 아빠가 나서서 아무 얘기도 안해주는 게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감독님 말씀이 우선이니까. 기본기가 잘 갖춰지면 실전 기술이나 그런 거는 야구 선배로서 나중에 가르쳐줄게. 고등학교 때 쯤이나 될까. 그래도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라도 물어보렴. > >아빠는 배고파서 야구를 했어. 초등학교 6학년 때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화려해 보이는 선수들을 보면서 야구라면, 야구 선수라면 우리 가족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거라는 간절함으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악착같이 야구를 했지. 최고의 선수가 되면 집안도 일으켜 세우고 부와 명예도 쥘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헝그리 정신이라고나 할까. 물론 너는 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래도 정후는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아빠 어릴 적보다 나은 것 같아. 지금까지 힘들어도 야구 관두겠다는 말은 한 적이 없으니까. 야구 하면서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니 아빠도 좋다. > >야구 하면서 앞으로 시련도 있을 거고, 아빠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게 될 거야. 그래도 네가 선택한 길이니까 계속 지금같이 즐기면서 야구 하기를 바랄게.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도 잊지 말고. 분명 넌 아빠보다 더 잘 할거야. 승부근성은 타고난 것 같으니까. > >내 아들 정후야, 사랑한다. >---- >2011 시즌 가정의 달 中 이종범, 아들에게 띄우는 편지. 한겨레 (인터뷰)[* [[https://m.hani.co.kr/arti/sports/baseball/477197.html?_fr=nv#csidx5b8185939da9274aa5125bba5b2a5ec|관련 기사]]]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정후_넥센계약.jpg|width=100%]]}}}|| || '''KBO 리그 첫 부자 1차 지명''' || * 아들 이정후는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넥센 히어로즈 1차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단했다. 이종범과 함께 역대 최초로 1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성한 부자선수가 됐다. 이정후는 데뷔 시즌부터 맹활약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켜 아버지의 유일한 한이었던 [[KBO 신인상]][* 데뷔 시즌에도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군복무로 데뷔가 늦어진 1년 선배 [[양준혁]]의 엄청난 활약에 의해 신인왕을 빼앗겼다. 반대로 이종범은 다음해 양준혁의 한이 된 MVP를 수상하며 복수(?)했다.]의 꿈을 이뤘고, 프로 데뷔 3년차만에 국가대표 탑타자로 크게 성장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별명을 물려받아 ‘바람의 손자’로 불리우고 있다. * 아들이 야구를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좀처럼 아들이 야구하는 곳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스타의 아들이 아니라 야구선수 이정후로 인정 받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마음 같아선 직접 소매를 걷고 지도하고 싶었지만[* 사실 딱 하나 지도한 것은 우투좌타 하라고 한 것이 전부라고] 꾸욱 참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고, 가끔씩 학교로 데리러 가는 것이 전부였다고. 과거 인터뷰에 밝혀진 일화에 따르면 그러던 어느날 멀찍이서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종범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정후가 형들하고 라면 먹고 있네. 몇 번 먹지도 못하면서 뭐 저리 좋다고 신나하고 있을까. 야구하는게 정말 좋은가봐.”라고 살짝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고. 20여년 전 자신의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https://m.edaily.co.kr/news/Read?newsId=01115206589719096&mediaCodeNo=258|관련 기사]]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486730_110137_2518.jpg|width=100%]]}}}|| ||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부자 국가대표'''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야구금메달 부자.jpg|width=100%]]}}}|| || '''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첫 부자 금메달''' || * 2017년 11월 일본에서 열린 24세 이하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 최종 엔트리에 승선해 맹활약 이정후는 아버지 이종범 대표팀 코치와 함께 ‘한국 최초 부자(父子) 국가대표’가 됐다. 이후 2018년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발탁 되며 아버지 이종범과 국가대표에서 다시 [[https://m.sports.naver.com/news.nhn?oid=477&aid=0000097193|호흡을 맞췄다.]] * 절친 [[양준혁]]은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이종범 씨는 제가 닮고 싶은 부분이 정말 많다. 다른 것보다도 특히 2세에 교육에 대한 노하우를 꼭 전수받고 싶다”며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052/0001518739|부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여담으로 서울 [[예원학교]]에 진학을 앞둔 딸의 음악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현역 은퇴와 함께 서울로 이사갔고 이로인해 이정후 역시 광주 [[무등중학교]]에서 서울 [[휘문중학교]]에 전학을 갔다. 당시 이정후는 한창 예민할 시기인 중2때라 정든 교정과 친구들을 떠나 낯선 곳에서 다시 야구를 시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고 한다. 이를 아내로부터 전해 들은 이종범은 아들 이정후에 너무나도 미안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이종범은 2017년 9월 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vs삼성 라이온즈 경기의 해설을 맡았는데, 경기에 앞서 아들을 언급하며, “정후는 잡초처럼 자란 것도 아니고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랐다. 힘든 프로 생활을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야구를 하는 내내 아빠의 수식어가 따라다닐 텐데, 어린아이가 이를 감내할 수 있을지 몰라서 야구를 반대했다. 야구보다는 축구나 골프를 하면 좋겠다고 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에도 자질이 있었는데, 자기가 야구를 제일 좋아하더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프로 지명이 되고, 운 좋게 주전 기회를 잡아 좋은 성적까지 내주니 너무 감사하다.”라고 돌아봤다. 이후 아들 이정후가 [[KBO 신인상]]이 가까워지면서 “정후 덕분에 과거의 내 기록이 재조명 되고 신분상승했다며 여기저기서 인사도 많이 받고 괜히 혼자 실실 웃기도 한다”며 기쁜 마음을 한껏 드러내기도 했다. 여담으로 피는 못 속이고 운명은 악착같다고 아들 이정후는 고종사촌형인 [[윤형준]]이 야구를 시작하자, 3학년을 앞둔 2007년 2월에 이종범이 스프링캠프를 떠난 사이 어머니 정연희 씨와 몰래 야구부 테스트를 [[https://m.sports.naver.com/news.nhn?oid=001&aid=0009519672|보러 갔다.]] 이를 알게 된 이종범은 “그럼, 왼손으로 쳐라.”라는 조건을 내밀었고, 오른손잡이 이정후는 [[https://m.sports.naver.com/news.nhn?oid=144&aid=0000574077|우투좌타가 됐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9BBFADF-067B-454D-A48A-14D2C208AD76.jpg|width=100%]]}}}|| || '''2021년 세계 최초 부자 타격왕''' || * 아들 이정후가 2021시즌 타율 3할 6푼을 기록, 생애 첫 타격왕을 차지하게 되면서 '''세계 최초'''로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타격왕에 오르게 됐다. 아들이 프로 5년차만에 [[KBO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하면서 야구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부러움을 받는 대상이 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0004719350_001_20221014161103831.jpg|width=100%]]}}}|| || '''KBO 40주년 기념 레전드 40인''' || * 2022년 7월 16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KBO 40주년 기념 레전드 40인 중에서도 높은 투표율로 레전드 4인에 선정되어 이날 [[KBO 올스타전]]에 출전한 아들 이정후에게 축하받았다.[* 이종범은 전문가 투표에서 149표(76.41점), 팬 투표에서 59만5140표(10.90점)를 얻어 총점 87.31로 3위를 차지했다.] 재밌는 점은 이종범이 1994년 역대 최초 타격 5관왕을 달성해 낸 24세 나이와 같은 나이인 2022년 아들 이정후 역시 타격 5관왕을 달성해 내며 [[KBO 리그]] '''사상 최초가 되는 부자 타격 5관왕 외에 정규시즌 MVP를 차지하며 한·미·일 최초 부자 MVP'''를 이뤄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8PPzLapvdYE)]}}}|| || ▲ '''사상 첫 부자 MVP'''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