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종범 (문단 편집) == 평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hno9KlAMqBA)]}}}||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fpj1mUCDFtg)]}}}|| ||<-2> {{{#fff ▲ 야구천재 / 바람의 아들}}} || 199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해 “바람의 아들, 야구 천재”라는 별명까지 얻은 선수로[* 지금으로 치면 [[이정후]]의 타격과 [[박해민]]의 주루/수비를 모두 갖춘 유격수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시즌 성적 자체도 괴랄한데, 1993~1997 시즌 중 방위복무로 홈경기만 뛰었던 1995 시즌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시즌에서 홈런, 안타, 득점, 도루 모두 5위 이내에 들었다는 점만으로 이종범의 대단함이 설명된다.] 엄청난 주루 능력과 유격수라는 포지션[* 이후 여러 포지션에 출전하게 되는데 외야수를 제외한 다른 포지션은 훈련을 제대로 받은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평균 이상의 소화 능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뛴 적이 있으며, 96년에는 그야말로 경기 중에 갑자기 포수 마스크를 쓰고 당대 최고의 강속구 투수인 [[이대진]]과 [[임창용]]의 공을 받았으며 당해 40도루를 기록한 [[김재걸]]을 도루사 시키기도 했다.], 최전성기로 평가받는 5년 간은 해당 기간 동안 통산 홈런 2위라는 뛰어난 펀치력과, 통산 타율이 가장 높은 0.332를 기록할 정도로 정교한 컨택 능력, 통산 도루가 무려 310개나 되는 우수한 주루능력을 뽐냈다. 주요 시즌의 기록을 살펴보면 타율 0.393, 196안타, 84도루, 113득점, 출루율 0.452, OPS 1.033 (모두 1위)를 기록한 1994년은 이종범 야구인생의 정점이자, KBO 리그 역사에 남을 시즌이었다.[* KBO 리그 역대 단일시즌 야수 sWAR 1위(11.77)다.] 또한 1997년에는 타율 0.324, 30홈런(2위), 64도루(1위), OPS 1.009(4위)로 [[30-30 클럽]]에 가입하고 KBO 역대 최초로 트리플 쓰리[* 한 시즌 동안 3할 타율, 30홈런, 30도루를 기록하는 것. 정확성(타율)과 파워(홈런), 스피드(도루)를 모두 갖춰야 하기 때문에 KBO 역사상 30년 역사에 6명밖에 배출하지 못할 만큼 어렵다. 다만 30홈런, 30도루를 달성한 선수도 6명 뿐이기 때문에 일단 모두 성공하기는 했다.]를 달성했다. 특히 1994년의 타율은 프로 원년인 1982년 [[백인천]]의 0.412 다음으로 최고 타율이며, 안타는 2014년 [[서건창]]이 201안타로 경신할 때까지 최고 기록이었다.[* 경기수는 14년 서건창이 128경기 체제, 94년 이종범이 126경기 체제로 별 차이 없지만 타석수는 14년 서건창이 616타석으로 561타석의 94년 이종범보다 더 많은 타격 기회를 가져갔다. 따라서 타율은 94년 이종범의 우위.] 비록 일본에서의 부상과 부진, 국내 복귀 이후 급격한 노쇠화에 의해 2004년부터 점점 하락세가 시작되어 말년의 기록은 전성기 때 지표를 상당히 많이 까먹었고 전성기 때 칭송받았던 이름값에 비해 통산기록은 많이 아쉬운 수준에서 그쳤지만[* 데뷔 이후 5년 동안 쌓은 sWAR이 42.16인데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 11년 동안 쌓은 sWAR은 26.58에 불과한 것을 보면 전성기가 제법 일찍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전성기가 비슷한 급의 선수들에 비해 약간 일찍 끝난 것도 있으나, 전성기에 해당하는 20대 후반~30대 초반 시기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낸 부분이 KBO 통산 기록이 생각보다 빈약한 결정적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이종범은 만 33세 시즌인 2003년에 3할-20홈런-50도루를 기록하며 2022년에 [[이정후]]가 경신하기 전까지 21세기 중견수 단일시즌 sWAR 1위(7.11)였던 기록을 남겼고 만 35세 시즌이자 꽤나 심각한 투고타저 시즌이었던 2005년까지도 규정 타석 3할 타율을 기록했다.] 전성기 시절 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활약과 더불어 타이거즈를 네 차례 정상으로 이끈 핵심 선수라는 점까지 겹쳐 타이거즈 팬들의 지지가 매우 높은 선수이다. 특히 [[한국시리즈]]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같은 큰 경기[* 특히 [[1993년 한국시리즈|1993년]]과 [[1997년 한국시리즈|1997년]] 한국시리즈는 전체 시리즈를 이종범이 거의 지배하며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고 백전노장으로 출전한 [[2009년 한국시리즈|09년]] 1차전에서의 2타점 역전 적시타와 1타점 결승타의 활약으로 1차전 MVP, 국제대회에선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8강 한일전 2타점 결승타 등]에 매우 강한 모습를 드러내며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의 면모를 보여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