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화문 (문단 편집) == 역사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석조전 박공.png|width=100%]]}}}|| ||<:> {{{#000000 {{{-1 [[덕수궁 석조전|{{{#000 덕수궁 석조전}}}]]의 이화문 부조.}}}}}} || 개항 이후 [[일본 제국]]의 [[일본 국장|국화문]]을 본따 만들어졌으며 공식적으로 지정된 것은 '''대한제국''' 시기인 [[1897년]]의 일이다. [[프랑스]]의 백합이나 [[일본]]의 국화처럼 '''원래는 왕조의 문양이지만, 군주국이기에 사실상 [[나라문장|국장]]으로 쓰였다.''' 때문에 대한제국 시기의 국가/황실의 성격이 부여된 곳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공문서나 궁궐 건물들은 물론이고, 내/외부 장식, 가구, 심지어 가정용품에도 이화문이 그려진 문화재가 종종 확인된다. 또한 근대엔 군의 개인화기 가늠쇠 밑에 국장이나 왕실 문장을 새겨 넣는 것이 유행이라, 당시 수입된 화기엔 항상 이화문을 새겨넣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대한제국은 무기를 스스로 생산할 수 없었기에 서구로부터 많은 무기를 도입하게 되었는데 이게 좀 대중 없이 섞였던지라 거의 무기 전시장급이었다고. 그만큼 훈련 난도는 더 높아졌을 듯. (후에 일본의 30년식 소총 생산설비를 들여와 용산에서 자체생산하긴 한다.)] 이화문 장식을 직접 보고 싶다면 [[덕수궁]] 석조전에 마련된 황실 복원관을 견학해 보면 좋다. 또한 [[창경궁 대온실]]의 이화문 장식, [[운현궁]] 이로당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양관(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건물이 보이는데, 그 양관 지붕에도 금속으로 된 이화문 투각을 볼 수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runus_seal_taiwan.pn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일본 황실.svg|width=70%]]}}} || ||<:> {{{#000000 {{{-1 중화민국(대만)의 매화 문장.}}}}}} ||<:> {{{#000000 {{{-1 일본의 국화 문장.}}}}}} || 비슷한 문장으로는 [[대만|중화민국]]의 매화문과 [[일본]]의 국화문이 있다. 셋 중에서는 최소 [[13세기]]부터 쓰인 일본의 국화 문장이 가장 오래되었으며, 이화문의 제작 동기도 일본 황실 문장일 것으로 보인다. [[중화민국]]의 [[매화]] 문장과는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다. 구분법은 이화문은 한 변당 꽃술이 3개이고 매화문은 작은 꽃술 2개가 큰 꽃술 사이에 껴 있는 형식이다. [[일본]]의 [[국화]] 문장과의 형태의 유사점은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무늬라는 것 외에는 없다. 국화문보다는 차라리 일본 경시청이나 육상자위대 등에서 쓰이는 벚꽃 문양이 더 유사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