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유로 (문단 편집) == 건설 경위 == 자유로가 없던 시절만 해도 "홍수 하면 고양, 파주"라 할 정도로 악명 높은 저지대였다[* 파주시의 [[문산역]]도 1998년 홍수로 떠내려가버리는 바람에 아예 경의선을 둑처럼 높여 지었다.]. [[1990년]] 9월에 발생한 중부지방의 대홍수로 무너진 [[고양시]](당시 고양군) 지역의 [[한강]] 제방[* [[일제강점기]]에 한강 유역을 매립하여 저지대 토지를 만들고자 축조한 골목길 정도의 폭이 좁은 제방이었는데, 오래된 제방인데다 이례적인 대홍수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붕괴한 것이다. 이 제방의 붕괴로 지금의 [[일산신도시]] 지역을 비롯해, 고양시 대부분 지역이 침수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서울에서는 서울시내 수몰을 막기 위해 일부러 터뜨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을 한층 견고히 복구하고, [[이상희(1932)|이상희]] 당시 [[국토교통부장관|건설부장관]]의 제안에 따라 [[남북통일]] 대비용 연결 간선도로 건설 및 [[일산신도시]] 등 [[경기도]] 서북지역의 개발에 따른 도로수요에 대비하며, 성동IC~낙하IC 구간이 '''[[임진강]]을 사이에 둔 접경지대'''라는 것을 활용해 대북선전을 염두에 두고 건설되었다. 1990년 10월에 착공돼 1차 구간인 [[행주대교]] 북단~[[성동IC]]([[오두산통일전망대|통일전망대]], 29㎞)는 1992년 8월에 완공됐으며[*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한국토지개발공사(한국토지공사)]]가 개발 중이던 [[일산신도시]]의 개발이익을 투자해 한국토지개발공사가 사업시행자로서 건설했다. 그래서 성동IC 일대를 지날 때 도로 가운데에 한국토지개발공사의 이름으로 세운 준공기념 표지석이 있다.], 2차 구간인 성동IC(통일전망대)~[[자유IC]]([[임진각]], 17.6㎞)는 1994년 9월에 완공됐다. 이후 원래 서울 강변대로([[강변북로]])에 해당됐던 [[행주대교]]~[[가양대교]] 구간이 자유로에 편입돼 현재에 이른다. 통일 후 남북간 도로 연결에 따른 교통량 증가에 대비하여, 노반은 전구간 왕복 10차선 규격으로 건설됐다. 노동력은 --인건비가 필요 없는-- 군인으로 충당됐는데(...), 이는 자유로 일대가 접경지대여서 민간 건설인력을 마냥 투입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고, 자유로가 유사시 군사적 목적으로도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