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영희 (문단 편집) == 대중적 문필가로의 길 == 1985년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 귀국해 모교인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전임강사로 강의하기 시작했다. 1987년부터는 [[한국일보]] 계열의 영자 신문 코리아 타임즈에서 격주로 Crazy Quilt(조각이불)이란 이름의 영어 칼럼을 기고했다. 이 칼럼은 2000년까지 13년 동안 장기 연재되었다. [[1994년]] [[7월 17일]] 아버지이자 영문학계의 대선배이기도 한 장왕록 씨가 향년 70세로 타계[* 해수욕장에서 수영하던 중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익사하였다. 나이에 비해 상당히 건강한 편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사고로 타계하여 장영희 교수를 비롯한 가족들의 슬픔은 더욱 컸다고 한다.]하는 슬픔을 겪었으며, 1995년부터는 선친의 뒤를 이어 중고교 영어 교과서 집필에 본격 참여했다.[* [[두산동아]] 교과서에 장영희 교수 성함이 집필진에 나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성함도 언급된다. 이후 2007 개정 교육과정까지 교과서를 집필한다. 마지막으로 집필한 교과서는 [[NE능률]]에서 출판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장영희는 영어, 영문학에 관심있는 사람들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1999년 월간 <샘터>의 고정 필진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샘터>는 시인 [[피천득]], [[법정(승려)|법정]]스님, [[이해인(수녀)|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 등 당대 네임드급 작가들의 글을 오랫동안 게재해 왔는데, [[미국]]으로 치자면 [[대한민국]]에서 [[두산동아]]가 라이선스 발간하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같은 성격의 잡지였다. 이를 계기로 장영희의 대중적 인지도는 크게 높아졌다. 당시 연재했던 글들을 중심으로 1년 후인 2000년 하순에 첫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을 출간했는데 이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01년에는 [[안식년]]을 맞아 [[하버드 대학교]]에서 1년간 초빙교수로 근무했고 그 해 9월부터 [[조선일보]]에서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라는 문학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본래 이 칼럼은 다른 작가, 교수들과 교대로 기고하는 형식이었는데, 장영희의 글이 워낙 인기가 많아서 이후 장영희의 단독 칼럼으로 바뀌었다. 2004년부터는 아예 칼럼 이름도 '장영희의 문학의 숲'으로 바뀔 정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