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영희 (문단 편집) == 평가 == 평생 목발에 의지해서 걸어야 한 신체장애인, 3차례의 암투병 끝에 57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를 살고 갔다는 점만 본다면 '죽도록 고생만 했던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장영희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지인, 제자들에게 매우 큰 결례다. 장영희는 자신의 일상과 강단에서 일관되게 긍정, 희망, 밝음을 전하고자 한 인물이었다. 장영희가 발표한 다수의 수필, 칼럼들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경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장영희의 글을 읽고 팬레터를 가장 많이 보냈던 이들은 교도소의 재소자, 군인, 병원 환자들이었을 정도. 90년대 말 서강대 인문대(X관)[* 2010년대에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신축된 정하상관(J관)으로 옮기면서, 지금은 법학대학원 건물로 바뀌었다.]을 다녔던 학생들이라면 항상 양 겨드랑이에 목발을 짚고 당시 신설된 철제 슬로프를 힘들게 다니고도 늘 미소를 띄며 학생들의 인사를 모두 받아준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교양수업 중에 자신이 결혼식에 참석한 일화를 이야기하시며, 모두들 자신을 알아보며 아는 체를 해주었지만 정작 그녀가 원했던 것은 [[뷔페]]식이었던 식사시간에 두 손이 부자연스러웠던 그녀를 대신해서 누군가 음식을 담은 접시를 건네주는 것이었는데 결국 아무도 그렇게 해주지 않아서 굶고 왔다는 일화를 말씀하시면서 보인 정말 소녀같은 눈망울과 웃음을 담은 얼굴이 계속 그리울 뿐이다. 그리고 영어와 친숙하지 않았던 학생들의 [[콩글리쉬]]도 재치 있다고 다독여 주시고, 단지 교양 수업으로 3학점을 들었던 학생들까지 몇년 후까지도 기억해주시던 그 분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과 기억 그리고 추억속에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다. [[분류:한국 여성 작가]][[분류:문학 교수]][[분류:1952년 출생]][[분류:결성 장씨]][[분류:2009년 사망]][[분류:대한민국의 가톨릭 신자]][[분류:척추암으로 죽은 인물]][[분류:종로구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 출신]][[분류: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출신]][[분류:서강대학교 출신]][[분류:서강대학교 대학원 출신]][[분류:뉴욕 주립대학교 출신]][[분류:서강대학교 재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