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청천 (문단 편집) == 기타 == * 가족으로는 아내인 [[파평 윤씨]] 집안의 윤용자가 있으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2남 2녀를 두었다.[* 충주 지씨 대종회에 따르면 [[http://www.chungjuji.org/board/bbs/board.php?bo_table=qna&wr_id=9|1남 2녀]]라고 한다.] 아들인 [[지달수]]와 [[지정계]], 딸인 지선영[* 지선학 이라고도 한다.], [[지복영]][* 한국광복군 최초의 여자 광복군이라고 한다. 실제로도 참전해서 일본군과 싸운 전적이 있다.]도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했고 해방 후 화교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 맏딸 지선영의 남편이자 맏사위인 [[심광식]]도 광복군 및 국민혁명군에서 활동하였고, 해방 후 행적이 묘연하다. 6.25 전쟁 중 납북되었다는 설과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다만 여느 납북자와 달리 1963년 광복군 활동을 인정받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지복영의 아들이자 지청천의 외손자인 [[이준식(1956)|이준식]]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핵심 인사 중 1명이었고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활동했다가 2020년 현재 제11대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10227201608942|#]] * 당시 지하 활동을 하는 투사의 숙명과도 같이 가명을 많이 썼다.[* 한국의 독립운동가 외에도 다른 나라에서도 [[블라디미르 레닌|레닌]],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 등 지하 운동가들은 다들 당연히 가명을 썼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제의 [[지명수배]]를 피해 여러 이름을 돌려가면서 사용하기도 하여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지청천이라는 이름 이외에도 호나 자, 외가의 성인 이(李)를 이용하여 지수봉(池壽鳳), 지을규(池乙奎), 지석규(池錫奎), 이청천(李靑天), 이대형(李大亨) 등 여러 이름을 사용하였다. 성인이 된 후 자신이 지은 '청천(靑天)'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드물어 눈에 띄기 쉬운 성씨인 [[지(성씨)|지씨]] 성 대신 어머니의 성씨이며 흔한 성씨인 [[이(성씨)|이씨]] 성을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 '이청천(李靑天)'이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었고 많이 쓰였는데[*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이 이름으로 출마했다.] 실제로 오래된 기록이나 서적에는 본명 못지 않게 이청천이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등장하며 적잖은 사람들은 본명이 이청천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독립운동 때문에 도망을 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이름을 자주 고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성씨를 이씨로 표기한 이유가 많은 것이 지씨는 상대적으로 희귀한 성씨이기 때문에 조선인 중 성씨가 지씨인 이들이 보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였다는 후문이 있다. *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한터라 [[일본어]]를 잘했다. 신흥무관학교 교장에 재직할 당시에도 일본인 같은 어투를 사용했다고 한다. 연설 때 에-또(ええと, 한국어의 '어...음...')를 연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 해방 이후 [[병역법]]을 창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병역의무|대한민국의 징병제]], 징집병 제도의 초안은 모두 지청천의 병역법에서 기초하였다. 그런데 [[병역법/일본|일본 제국의 병역법]]을 베꼈다는 [[https://m.dcinside.com/board/freelabor/756?headid=&recommend=&s_type=subject_m&serval=%EC%9D%BC%EC%A0%9C|설]]이 있다.[* 사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전후와 초기에 제정된 법이 일본 법의 영향을 받아 베낀 부분이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