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촉한멸망전 (문단 편집) == 개요 == 촉한멸망전(蜀漢滅亡戰), 또는 위멸촉지전(중국어 간체: 魏灭蜀之戰, 정체: [[https://zh.wikipedia.org/wiki/%E9%AD%8F%E6%BB%85%E8%9C%80%E4%B9%8B%E6%88%B0|魏滅蜀之戰]](중국어 위키백과)) 263년, 위나라의 권신이었던 [[대장군]] [[사마소]]가 [[종회]], [[등애]], [[제갈서]]를 지휘관으로 삼은 16~18만의 원정군으로 촉을 멸망시킨 사건이다. 약 두달 동안 지속되었다. 전쟁 도중 사마소는 진공이 되었다. 전쟁 후 사마소는 진왕에 즉위하였다. 촉은 [[강유]]의 방어전략 개편으로 위나라에서 촉의 거점인 한중으로 진입하는 길목의 보루들을 비운 채였다. 이를 기회로 판단한 [[사마소]]와 [[종회]]는 촉 공격을 결의하고 원정 계획을 수립, 실행한다. 각각 3만여를 이끈 등애와 제갈서군이 촉의 북쪽 접경지대인 답중에 주둔한 강유군을 저지하며 피해를 강요하는 사이, 본대인 종회의 10만 군은 [[한중]]에 피해 없이 진입하여 전쟁 발발 한달여 만에 촉의 주요 거점인 한중, 그리고 한중과 성도를 잇는 길목의 핵심 관문인 양안관구까지 장악하였다. 한중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어 당초의 계획이 틀어진 촉군은 한중에서 성도로 나오는 입구인 [[검각]]에서 농성하며 위군을 저지하였으나, 정서 장군 등애가 음평의 산길을 통하여 강유관[* 江油關, 강유수(江油戍)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출전: 『中国历史地图集』第三册 22-23쪽. 여기서 수(戍)는 수자리(변방을 지키는 일), 둔영(屯營), 병사(兵舍)를 뜻한다.]으로 진격하였다. 촉 조정은 위군의 우회를 막기 위해 [[제갈첨]]을 파견하였으나,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험지 방어에 나서지 않았거나, 혹은 대단히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였다. 등애가 이끄는 군대는 제갈첨이 주저하는 사이 강유관의 항복을 받아내고, 큰 방해 없이 검각의 후방, 성도 인근인 평야로 진입하는데 성공하였다. 성도로 접근하는 적을 막아설 방도가 사라진 촉 조정에서는 항복론이 강하게 대두되었고, 황제 유선은 건의를 받아들여 등애에게 항복하였다. 검각에서 항전하던 강유의 군대는 제갈첨의 패배 소식을 듣고 종회군의 방해 속에서 퇴각하였으나, 성도에 도달하기 전에 항복 소식을 전해듣고 동광한군 오성(五城)현에서 위군에게 항복하였다. 이로써 삼국시대의 세 국가 중 하나인 촉은 멸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