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충렬왕 (문단 편집) === 며느리 [[계국대장공주]] 개가 책동 === 충렬왕-[[제국대장공주]]의 금슬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처럼 [[충선왕]]-[[계국대장공주]] 간의 금슬도 좋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부왕보다 더 심한 편이었다.[* 이 둘은 [[원나라]]에서나 [[고려]]에서나 별거하고 지냈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도 없었다.] 그리고 이것을 충렬왕파 신하였던 송균, 송린, 왕유소, 송방영 등이 부자간을 이간질하는데 써먹게 된다. 바로 [[계국대장공주]]를 [[충선왕]]과 이혼시키고, 고려 왕족과 재혼하게끔 하여 [[충선왕]]의 즉위를 막는 것이었다. 언뜻 봐서는 무슨 상관이 있나 싶겠지만, 당시 황금씨족인 [[원나라]] 황녀의 영향력은 '''고려의 왕위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컸다.''' 당장 충렬왕이 [[제국대장공주]] 사후 원나라 황족과 인척관계가 없어지자 충선왕에게 양위해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계국대장공주]]를 개가시킬 왕족으로 [[서흥후]](瑞興侯) 왕전(王琠)이 결정되었다. 그는 본래 [[정화궁주]] 왕씨의 조카로 제20대 [[신종(고려)|신종]]의 후손이었지만, 충렬왕의 이복동생으로 요절한 시양후(始陽侯) 왕태(王珆)의 양자로 들어가게 됨으로서 형식적으로는 충렬왕의 조카라는 가까운 인척이 되었기 때문인 것도 있었고, 현실적으로 잘 생겨서 공주의 호감을 살 수 있었던 바도 컸다. 서흥후 본인은 이 계획을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계국대장공주]]가 있는 [[원나라]]로 가게 되었고, 결국 계국대장공주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거기다 이 일은 당시 [[원나라]]에서 [[원성종|성종]] 테무르 칸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결정하는 분쟁에 얽히면서, 양측 모두 사생결단으로 진행된다. 당시 원 성종은 후계자가 없는 상태인데다 오늘 내일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위구르계 바야우트 부족 출신의 황후 브루간을 위시한 황후파는 성종의 사촌동생이었던 안서왕 아난다를 옹립하려 했고, 반황후파인 옹기라트 부족[* 대대로 황후를 배출한 원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외척 집안이다.]은 황제의 조카였던 카이산을 지지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충선왕]]이 카이산과 그 동생인 [[인종(원)|아유르바르바다]]와 절친'''이었다는 것이다. 자연 [[충선왕]] 일파는 카이산 형제를 지지했고, 그에 반하는 충렬왕 세력은 아난다를 밀게 됨으로서, 상황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결국 신하들이 선수를 쳐서 카이산([[무종(원)|원나라 제3대 무종]])을 옹립했다. 결국 충렬왕파 신하였던 송균, 송린, 왕유소, 송방연 등은 모두 처형되었다. 형식적으로는 안서왕 아난다를 지지했다는 이유였지만... 서흥후 왕전 또한 처형되었다.[* 《고려사》 <열전> 기록엔 충선왕이 용서해주려 했지만 원나라 승상이 이를 반대해 결국 참수되었다고 적혀 있다.] [[계국대장공주]]의 개가도 물 말아 먹고 끝이 났으며, 충렬왕은 모든 권한을 빼앗긴 채 쓸쓸히 고려로 귀국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후 세상을 떠났다.[* 사건 당시 충렬왕과 [[충선왕]] 모두 [[원나라]]에 있었다. 거기다 충렬왕은 '''아들의 사저에 거처하고 있었다.'''] 죽기 이전에는 아들인 충선왕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는 등 아들을 향한 감정이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찌 보면 원나라의 간섭으로 인하여 아내와 아들의 불화 속에서 살다간 비극적인 인물이다.[* 사실 충렬왕 본인도 전대의 군주들처럼 [[무신정권]] 탓에 불행한 삶을 살다간 임금이었다. 전술했듯 무려 30대 중반까지 무신정권을 겪어야 했으며, 모후인 순경태후 김씨가 자신이 태어난지 불과 1년만에 사망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인 고종이 무신정권과 몽골 제국의 압박속에 붕어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이후 정실 부인의 격도 낮아지게 되었고, 새로 맞이한 원나라 공주 신분의 아내 및 그 사이에서 낳은 혼혈 아들 충선왕과의 불화까지 감안해보면 매우 불행한 삶을 살았던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