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켄슈타인 (문단 편집) == 《프랑켄슈타인》의 가치 == 《[[걸리버 여행기]]》, 《[[유토피아]]》, [[요하네스 케플러]]의 《[[꿈]]》, 《[[지킬 박사와 하이드]]》 등과 함께 '''최초의 [[SF]] 소설'''로 거론되며, 특히 이 작품이 최초의 SF라는 데 무게를 실어주는 사람이 많다. 1970년대 [[영국]]에서 최초의 SF를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한 논문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신화나 설화에 있는 [[과학]]적인 이야기의 흔적을 외면하거나 다른 국가에 있는 과학적인 이야기의 흔적을 싸그리 무시한다 하여 까였다.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전기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다는 개념이 과학과 연관성이 없는 허구맹랑한 환상문학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당시는 갈바니가 그 유명한 전기로 죽은 개구리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실험으로 인해서 시작된 [[갈바니즘]][* 당시는 소설처럼 진짜 인간의 시체를 대상으로 전기적으로 부활시킬려는 시도가 실제로 이루어지던 시대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이 한참 활발하게 연구되던 시절이기 때문에 그 당시 과학지식을 배경으로 쓰여졌다는 면에서는 완벽하게 공상과학소설로 분류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프랑켄슈타인》은 최소한 '''영문학 [[SF]]의 효시'''가 맞다. SF(과학소설)을 환상문학의 갈래에 포함시킨다면 환상문학의 기원이야 선사시대의 신화나 설화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환상문학의 정의는 실제세계와는 다른 초자연성에 있다. 이러한 초자연성의 생경함에 독자는 기괴함이나 경이로움을 느끼고, 독자의 감상은 공포로 연결된다. 이같은 공포를 이용해 설화나 신화에 지배 이데올로기를 삽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학소설은 근대 이전의 신화, [[로망스]] 문학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것은 과학과 역사주의가 19세기를 지배하면서 [[사실주의]]가 등장했고, 과학소설은 이러한 [[사실주의]] 문예사조 안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의 과학적, 합리주의적 세계관으로 쓰인 과학소설은 원시시대의 신화, 설화와는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에서부터 다르다.[* 고영일. 「환상문학의 이론적 고찰」, 『이베로아메리카硏究』 제11권 (2000): pp. 243-249.] 《[[걸리버 여행기]]》나 《[[유토피아]]》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과학소설의 정의를 '합리적인 가상소설'로 볼 경우, [[SF]]의 뿌리를 유토피아 문학에서 찾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앞서 언급한 《[[유토피아]]》가 과학소설의 효시가 될 수 있다.[* [[고장원]]. 『세계과학소설사』, 서울: 채륜, 2008: p. 114] 그러나 유토피아 문학의 본질은 과학기술 자체가 아니라 정치, 사회 풍자에 있다. 과학기술은 사회풍자를 위한 도구 역할에 그친다. 그래서 《[[유토피아]]》에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국가 '유토피아'가, 《[[걸리버 여행기]]》에서 결핍을 모르는 풍요의 섬 '벤살렘 왕국'이 나오더라도, 이들 소설들은 [[SF]]로 부를 수 없다. 과학기술이 사회 및 인간과의 관계에 던지는 질문과 답이 없기 때문에 '원형적' 과학소설 또는 '선구적' 과학소설이라 해야 보다 적절할 것이다. 그러므로 [[SF]]는 '''과학적 지식에 근거해 과학을 주제로 쓴 공상소설'''이라 다시 정의할 수 있다.[* 박경서. 「Si-Fi와 『프랑켄슈타인』: 과학과 과학자의 반생명윤리의식」, 『신영어영문학』 제55권 (2013): pp. 53-54.] 따라서 갈바니즘에 근거한 생명창조 실험을 모티브로, 과학적 세계관에 대한 불길한 예감과 이에 대한 문학적 저항이 드러나는 《프랑켄슈타인》에 이르러서야 과학소설로서 명확한 정체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고영일. 「환상문학의 이론적 고찰」, 『이베로아메리카硏究』 제11권 (2000): p. 250.] 또한 의외로 프랑켄슈타인 관련 논문을 보면서 많이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프랑켄슈타인》보다 많은 것을 알려주는 작품이 《프랑켄슈타인》 이전에는 없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인조인간에 대한 경계 외에도 특히 완벽하리라고 생각되었던 과학의 실패, 사회화된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결말 등 의외로 지금까지도 연구하면 캐낼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프랑켄슈타인》 출간 당시에는 지금처럼 평론가들에게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공상 과학 소설이라는 장르가 없었으며 공포문학은 폄하의 대상이던 시대였기에, 기괴하고 반사회적인 문학으로 무수한 악평을 받았다. 또한 익명으로 발표된 당시에는 작가가 대체 누구냐는 것이 큰 관심사였는데, 작가가 메리 셸리로 밝혀졌을 땐 "스무 살이 채 안된 여자의 병적인 상상력이 만들어 낸 기이한 산물"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했다. 하지만 당대의 유명한 소설가였던 [[월터 스콧]](Walter Scott. [[아이반호]]의 작가)는 "이 소설은 보통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상상력의 결과이며 불경스러울 정도로 자연과 인간에 대해 암울하고 어두운 시각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Johanna M. Smith, "A Critical History," in Mary Shelley’s Frankenstein (Bedford Books of St. Martin’s Press, 1992), pp. 191-92.] 《프랑켄슈타인》은 당시 유행하던 괴기소설의 한 부류 정도로 취급받았고[* "Review of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The British Critic (April 9, 1818): pp. 432-38.] 오랫동안 문학사의 주류에서 잊혀져 왔다.[* 고원. 「연구 논문: 프랑켄슈타인과 19세기 영국 여성문학 - "모호한 정체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 『영국연구』 제12권 (2004): pp. 217-218.] 단, 이건 어디까지나 문학사에서 주요한 담론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말이지 '''책이 안팔렸다는 말은 아니다.''' 상업적으로는 성공한 작품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1910년, 1931년에 프랑켄슈타인 영화가 나온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