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대화 (문단 편집) == 여담 == * 대전 출신으로 [[대학]] 빼고 초중고 모두 대전에서만 다닌 [[대전광역시]] [[토박이]]지만, [[광주광역시]]를 연고지로 두고 있는 [[해태 타이거즈]]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고 전성기도 해태 시절이었기 때문에 올드 해태 팬들 중에는 그를 호남 출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부친 한상준(韓相俊, 1924. 2. 25 ~ ?)의 고향은 [[평안남도]]로, [[실향민/대한민국|실향민]]이다. 따라서 한대화는 대전 출신 실향민 2세다. [[대구광역시]] 출신 실향민 2세(부친의 고향이 경기도 개성)인 [[김재박]]과 동일한 케이스라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OB 시절 트레이드 대상 명단에 올랐을 때도 자신은 새로 창단될 대전 연고 팀인 [[빙그레 이글스]]로 가기를 매우 희망했지만, 구단은 그 말을 무시하고 해태로 트레이드해 버렸다.[* 만일 한대화가 빙그레로 갔으면 빙그레는 최소 한 차례는 [[KBO 한국시리즈]]를 제패했을 것이고, 해태 타선도 전성기 시절 그 강력함을 100%로는 발휘하지 못 했을 확률이 매우 높지만 [[야만없|야구에 만약이란 없는 법]]이다.] 이후 해태에서 중심 타선을 맡으며 전성기를 보냈을 때도 언젠가는 고향 팀 빙그레에서 한 번 뛰어보고 싶다는 의견을 몇 번 보이기도 했고, 1993년 말 해태에서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될 때도 고향 팀 [[한화 이글스]]에서[* 한대화가 트레이드되던 1993년 시즌 종료 후 시점에서는 구단명이 빙그레에서 한화로 바뀐 상황이었다.] 뛰어보고 싶다며 한화로 트레이드를 요구하기도 했다. 정작 은퇴는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하면서 은퇴할 때까지 선수로는 한 번도 고향 팀 이글스의 유니폼을 입어보지는 못했다. 다만 한대화가 한국시리즈에서 고향팀 빙그레 상대로 홈런도 치고 적시타도 때리는 등 해태의 승리에 일조해 빙그레를 응원하던 충청권 야구팬들에게 더 미움을 받았다. 때문에 한동안 대전 원정경기를 갈 때 야구장에 '''"배신자 한대화"'''라는 현수막이 걸렸을 때 상당히 억울함을 피력하기도 했다. 훗날 [[한화 이글스]]의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선수로써 입어보지 못한 고향 팀의 유니폼을 감독으로써 입어보게 되어 감회롭다고 하였고, 디씨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자신의 이름이 마킹된 [[빙그레 이글스]] 유니폼을 조공받았을 때도 뭔가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고 한다. * 성격이 상당히 순하고 유들유들한 편이다.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 심판들에게 항의할 때 한대화 감독이 만만해 보이는지 심판들이 막 뻗대는 경향이 있다. * 1986년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되어 그 해 타율 0.298, 14홈런, 66타점으로 맹활약한 한대화는 이듬해인 1987년 시즌 타율이 0.236로 급전직하 했는데 이유는 원래 [[시력]]이 안 좋아서 [[콘택트렌즈]]를 착용했지만 렌즈가 자주 말라서 경기 도중 화장실에서 몇 번이고 [[안약]]을 넣는 불편함 때문에 아예 맨눈으로 시합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를 보다못한 한 [[기자]]가 "렌즈가 그렇게 불편하면 [[안경]]을 쓰는게 좋지 않느냐" 라고 묻자 순둥이였던 한대화는 '''"그러면 ([[김응용]])감독님이 건방지다고 하실 것 같다"'''[* 실제로 옛날에는 윗 사람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을 지식 자랑을 하는 행위로 보아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있었다.]며 주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기자가 대신 [[김응용]] 감독에게 "한대화 선수가 경기할 때 콘택트렌즈가 불편하다고 하는데 안경을 써도 되겠습니까?" 라고 물어봤는데 김응용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답하길, > '''허허허, 아니 야구만 잘한다면 안경 아니라 [[쌍안경]]을 쓰고 나와도 누가 말린대?'''[* 야구만 잘 하면 사사로운 부분은 신경쓰지 않는 김응용 감독의 야구관이 드러난 부분이다.] 그렇게 허락을 받은 한대화는 안경을 쓰기 시작했고, 1988년 시즌 타율 0.320, 18홈런,[* 타율 7위, 홈런 3위. 이 해 홈런 1위가 [[김성한]], 2위가 [[장채근]]이었으니 해태가 홈런 1, 2, 3위를 석권한 셈이다.] 57타점 이란 준수한 성적으로 보답했다. * 한대화의 [[안경]]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 더. 1990년 8월 1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사직 야구장|사직]] 원정경기 도중 1루에서 2루로 진루하던 한대화는 상대 야수가 잘못 던진 공에 얼굴을 맞아 안경이 깨지고 오른쪽 뺨을 여섯 바늘 꿰매는 부상을 입었다. 이후 정신을 차린 한대화는 구단 측에 "안경도 신체의 일부이니 경기 도중 깨진 안경값도 보상해달라"고 요청했는데 해태의 [[이상국]] 운영부장은 "그럼 경기 도중에 금이빨이 빠져도 물어줘야 하냐?" 라고 되받아치며 그냥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한대화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이상국 부장은 판사이던 친구에게 유권해석을 구했고, 판사는 '''"안경도 신체의 일부라고 간주하는 것이 맞다"'''는 답을 내놓았다. 결국 이상국 부장이 "안경 렌즈는 가격이 천차만별이니 알아서 하라. 구단은 안경테 값만 주겠다"며 통보하자 한대화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안경테 값 66,000원을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1990'''년도의 66,000원은 오늘날의 20만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 2011년에 모 언론사에서 야구감독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을 뽑으라고 했을 때 '''유일하게 답변하지 않았다.'''[[http://isplus.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6280646|#]] [[노무현]]을 고른 [[이만수]]나 [[이명박]]을 고른 [[박종훈(1959)|박종훈]]의 답변이 상당한 논란이 된 것을 보면 꽤 현명한 대답이었다.[* 참고로 당시 [[조범현]], [[김광수(1959)|김광수]], [[양승호]], [[류중일]], [[김시진]]은 [[박정희]]를 선택했다. 박정희도 논란이 큰 인물이기는 하나 조사 시점 기준으로도 임기를 마친 지 30년이 넘게 지났고 기성세대가 박정희를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꼽는 일은 드물지 않으므로 화제거리가 될 만한 일은 아니었다.] * 아버지 한상준(韓相俊, 1924. 2. 25 ~ ?)은 [[천도교]] 대전 교구장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935754#home|역임했다]]. 한대화도 그래서 천도교 신자로 알려져 있었으나, 무종교로 밝혀졌다. * [[김시진]]과 무척 친하다. 고교부터 대학. 프로시절, 코치시절에도 같이 있었던 적이 없는데 사이가 가깝다. 한화 이글스 감독 당시 넥센전이면 넥센 덕아웃으로 찾아가 김시진에게 "꼴뚜기 형님"이라 별명을 부르며 아이스크림을 먹여주는 정도로 친하다. 이런 관계로 한때 둘의 관계를 소재로 한 혀갤문학이나, 칰갤문학이 판치기도 했다. * [[이종범]]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중에 한명이었다고 한다. 이종범은 신인시절 한대화의 실력도 뛰어나지만 인품이 훌륭해서 반했다고 한다. 첫 한달간 엄청 못한건 아니지만 2할대 초반이라 힘들어했는데 5월초에 한대화가 따로 불러서 부드러운 말투로 "종범아 너는 앞으로 우리팀 최고의 선수가 될테니 눈치보지 말고 마음 놓고 니가 하고 싶은대로만 야구를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다. 걱정말고 니가 하던대로만 열심히 해라."라고 말해줬는데, 그 말이 너무 기뻤던 이종범은 그때부터 마음이 갑자기 편해지더니 방망이가 잘 맞기 시작해서 5월 타율이 눈에 띄게 올라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한대화의 그날 조언이 30년동안 잊혀지지 않았고 그의 인품을 지금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실제로 한대화는 사생활에서 부드러운 선배였고, 후배들을 갈구거나 하는 선배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 당시 한대화가 뛰던 팀이 다른 팀도 아니고 그 험악하기 짝이 없던 해태 타이거즈였음을 감안하면 더욱 더 높이 평가받을 부분이다.] 김성한 역시 이종범이 1993 한국시리즈 4차전까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자, "너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야구해라"는 조언에 힘입어 이종범은 5,6,7차전을 맹활약으로 해태를 우승시킨 점을 감안하면 이종범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더 야구를 잘하는 선수라는 걸 입증하는 에피소드이다. * [[골초|헤비 스모커]]다. 실제로 경기 중에도 담배를 피운다고 인터뷰에서도 직접 밝힌 적이 있고, 한화 감독 시절에도 경기 도중 작전이 실패했다거나 팀의 대량실점 등 경기가 제대로 안 풀리면 수시로 덕아웃 뒷문으로 나가는 모습이 심심찮게 비춰졌다. 여기에 2012년에는 한대화 감독을 비출 때 "한 대 피우고 싶으시죠?" 라는 문구와 함께 니코스탑 광고가 깨알같이 뜨기도 했다. * 동국대학교 3년 선배인 [[강석우]]와 친한 편인지라, 그 영향으로 [[강석우]]가 한화의 잠실 원정 경기 직관을 오기도 했다. * 현역 시절 [[KBS 연예대상|1993년 KBS 코미디대상]]에서 [[형이 왜 거기서 나와|뜬금없이 심사위원으로 나온 적이 있다.]] 사실 당시 KBS 코미디대상 심사위원들 대부분은 KBS 예능국장 등 높으신 분들과 선배 코미디언들이 주를 이루고 일부 셀럽들에게도 심사위원 자격으로 초빙하기도 했었다. 만화가 [[강철수]]와 [[배금택]]도 심사위원 자격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한대화도 바로 그 연장선에서 심사위원으로 초대받았다. 당시 해태의 V7 주역이기도 하고 개인 통산 7번째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이기도 했으니. 여담으로 이 해 [[미스코리아]] 진에 오른 [[궁선영]] 또한 심사위원 자격으로 출연했었다. * [[http://www.nohitnorun.com/280|불암콩콩코믹스 - 레전드 한대화]] * [[결혼]]을 상당히 일찍 했으며, 또한 50대 초반이라는 매우 이른 나이에 [[할아버지]]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