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정숙 (문단 편집) == 여담 == * 4명의 남편(임원근, 송봉우, 신일룡, [[최창익]])에게서 서로 성이 다른 자녀들을 여러 명 두었다. --[[장건상]]에 의하면 남편만 7명이라 한다.-- [[원나잇 스탠드|사랑 없는 성관계]]도 가능하다고 주장해서 화제가 됐다. 아들 중 하나인 허묵은, [[이한영]]의 증언에 따르면 연락부 과장으로 일했는데 [[백건우]], [[윤정희(1944)|윤정희]] 납치 공작에도 동원되었으나, 공작원 할머니가 "왔어요."라고 하면 숨어있던 공작원들이 튀어나와 끌고가기로 한 것을 "다들 어디 갔나."라고 다른 신호를 보내는 바람에 공작원들이 눈치만 살피면서 나오지 못하고, 허묵 혼자서 나왔다가 괜히 북한 사람인걸 티내는 바람에 경악한 윤정희가 그대로 미국 영사관으로 달아나버리면서 실패했다고 전해진다. * 1921년에는 한국 여성 최초로 [[단발]] 머리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머리를 자르면 죽는 줄 아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외치는 [[유교]] 문화가 생생하게 있는 시절이었다. 이 때문에 단발머리=공산주의자라는 인식도 생겨서 군벌혼전 중에서는 단발머리 여자만 보이면 참수하기도 했다. *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 당시 북측 대표로 참석했는데, 평양을 방문한 [[동아일보]] [[송건호]] 주필이 소개를 받고 "나는 동아일보 송건호라고 하는데 선생님 동생을 잘 알고 친합니다."라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허정숙은 “그래요”라고 한 마디하더니 입을 다물고 굳은 표정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그녀의 여동생인 허근욱은 북한 체제에 반감을 가지고 [[1.4 후퇴]] 당시 남편과 함께 월남했기 때문이었다. * 최후까지 김씨 정권에 충성하며 살아남은 행적에서는 느껴지지 않지만, [[정상진]] 등의 인사들은 허정숙의 인품 등을 꽤나 높게 평가했다. 독재정권에 부역하며 그 유지와 연장에 도움을 주면서도 자기 자신은 온건파로써 남으려 한 [[김재익]]나 [[저우언라이]]같은 이들과 비슷한 길을 걸은 셈이다. 다만 허정숙은 그 정도로 넓은 영향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분류:1908년 출생]][[분류:1991년 사망]][[분류:종로구 출신 인물]][[분류:북한 중앙재판소장]][[분류:북한 정무원 부총리]][[분류:북한 문화상]][[분류:북한 사법상]][[분류:조선로동당 6기 비서국 비서]][[분류:조선로동당 간부부장]][[분류:조선로동당 1기 중앙위원회 위원]][[분류:조선로동당 2기 중앙위원회 위원]][[분류:조선로동당 3기 중앙위원회 위원]][[분류:조선로동당 6기 중앙위원회 위원]][[분류:애국렬사릉 안장자]][[분류:배화여자중학교 출신]][[분류:배화여자고등학교 출신]][[분류: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5기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분류:6기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분류:7기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분류: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부의장]]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