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중해 (문단 편집) === 3.23 완전작전 === [youtube(dQykvc_xpSs)] [* 사살당한 무장공비의 시신이 편집되지 않은채로 나오기 때문에 연령제한이 걸려있다.] 1980년 3월 23일, 황중해(22, 당시 일병)는 한강 보초근무 중 철통경계로 북한 [[무장공비]] 3명의 침투를 격퇴하였다. 3월 23일 새벽 2시 50분 경, 한강 하구 지역 초소에서 후임인 김범규(金範圭, 당시 이병)와 경계 근무 중이던 황중해는 한강을 통해 몰래 잠입하는 무장공비 3명을 발견하였다. 그는 옆에 있던 김범규에게 옆 초소로 달려가서 이 사실을 알리라고 지시하고, 본인은 다가오는 무장공비를 향해 사격하여 무장공비 3명 중 2명을 사살하였다. 이는 황중해가 양안 시력 2.0으로 중대 특등사수였으며 경상북도 영천시의 시골 출신으로 달빛 없는 야음에도 익숙한 덕분에 가능했던 일. 이후 김범규에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5분 대기조]]와 함께 도망치던 1명도 마저 소탕하였다. 이 공로로 4월 15일, 황중해 일병은 충무[[무공훈장]]을 받았고, 포상금 1,700만원[* 국방TV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은 1,050만원을 수표로, 기타 양복 맞춤비와 고향에서 받은 위문품 등을 합쳐서 1,7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포상금 중 대부분은 형의 사업자금으로 쓰였다고 한다.], 사단장 휴가 6개월, 연대장 휴가 6개월을 받고 고향에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갔다. 김범규 이병도 같은 훈장과 포상을 받았다. 그리고 황중해 일병과 김범규 이병은 각각 2계급 특진하였고 부대에서 자체적으로 신설한 초대 경계왕에 선정되었다. 고향인 영천에서는 환영 카퍼레이드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