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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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重海
1958년 ~

1. 개요
2. 생애
2.1. 3.23 완전작전
3. 근황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퇴역 군인이자 현 택시기사.

병 복무 중이던 1980년 경계근무 중 한강으로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 3명을 성공적으로 격퇴하여 충무무공훈장을 수여받았으며, #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군 내 정신전력교육, 경계교육 등에서 우수사례로 다수 회자되고 있다.


2. 생애[편집]


1958년 경상북도 영천군(現 영천시) 대창면 대창1리[1]에서 태어났다.

부산 연산중학교졸업한 뒤 대우실업 부산공장에서 근무하던 중, 1979년 4월 육군에 입대해 제9보병사단 제29보병연대에 배속되었다. 복무 중에 전국경비대대 사격대회에서 60점 만점에 58점을 따내는 등 이미 특등사수로서 인정을 받았다.

2.1. 3.23 완전작전[편집]



[2]

1980년 3월 23일, 황중해(22, 당시 일병)는 한강 보초근무 중 철통경계로 북한 무장공비 3명의 침투를 격퇴하였다.

3월 23일 새벽 2시 50분 경, 한강 하구 지역 초소에서 후임인 김범규(金範圭, 당시 이병)와 경계 근무 중이던 황중해는 한강을 통해 몰래 잠입하는 무장공비 3명을 발견하였다. 그는 옆에 있던 김범규에게 옆 초소로 달려가서 이 사실을 알리라고 지시하고, 본인은 다가오는 무장공비를 향해 사격하여 무장공비 3명 중 2명을 사살하였다.

이는 황중해가 양안 시력 2.0으로 중대 특등사수였으며 경상북도 영천시의 시골 출신으로 달빛 없는 야음에도 익숙한 덕분에 가능했던 일. 이후 김범규에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5분 대기조와 함께 도망치던 1명도 마저 소탕하였다.

이 공로로 4월 15일, 황중해 일병은 충무무공훈장을 받았고, 포상금 1,700만원[3], 사단장 휴가 6개월, 연대장 휴가 6개월을 받고 고향에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갔다. 김범규 이병도 같은 훈장과 포상을 받았다. 그리고 황중해 일병과 김범규 이병은 각각 2계급 특진하였고 부대에서 자체적으로 신설한 초대 경계왕에 선정되었다. 고향인 영천에서는 환영 카퍼레이드도 하였다.


3. 근황[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제9보병사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김범규는 이후 의무복무만 마치고 전역하였으나, 황중해는 부사관에 지원해 계속 복무하다가 2012년 10월 32년간의 군 생활을 마감하고 상사로 전역하였다.

현재는 택시기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무장공비를 소탕했던 제9보병사단은 2002년 5월에, 기존의 '구산리 소초'의 이름을 '황중해 소초'로 명명하여 그의 공적을 기렸다. 육군 최초로 부사관의 이름을 붙인 사례이다. 관련 기사



2023년 3월 국방TV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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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사살당한 무장공비의 시신이 편집되지 않은채로 나오기 때문에 연령제한이 걸려있다.[3] 국방TV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은 1,050만원을 수표로, 기타 양복 맞춤비와 고향에서 받은 위문품 등을 합쳐서 1,7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포상금 중 대부분은 형의 사업자금으로 쓰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