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훈족 (문단 편집) ==== 440~442, 동로마 침공 ==== 훈족과 로마 사이의 의외로 원만하던 관계는 [[아틸라]]의 시대에 끝장났다. 당시 훈족은 몇 세대에 걸쳐 조금씩 서진(西進), 로마 국경 바로 건너편까지 진출해 있었다. 형 블레다와 함께 훈족을 통치했던 아틸라는 즉위 초기에는 근방의 게르만족을 공격하는 데 집중했으나, 게르만족에 대한 정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때마침 [[동로마 제국]]이 서로마 제국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원정군을 보내자 그 기회를 활용, 440년 말 동로마를 침공했다. 동로마 역시 훈족의 준동을 틀어막기 위해 연공을 두 배로 올리는 조건을 제시한 상태였으나, 아틸라는 이를 받아들이는 제스처를 취하다가 얼마 안 있어 사소한 트집을 잡아 협정을 깨버린다. 이 당시 동로마가 아프리카 수복 작전을 위해 서로마에 보낸 병력은 상당 부분 [[발칸 반도]] 야전군에서 차출한 병력이었기 때문에 동로마는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없었다. 이는 동로마 입장에서도 상당한 타격이었지만, 서로마는 부유한 아프리카 속주를 [[반달족]]에게서 탈환할 절호의 기회에 동로마의 지원군이 철군해버렸기에 더욱 뼈아픈 일이었다. 아틸라는 442년까지 [[발칸 반도]] 북부의 주요 군사거점들을 여럿 함락했다. 이전 세기 말에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하드리아노폴리스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패배]]를 당한 뒤에도, 요새화된 거점들은 고트족이 [[공성전]]을 할 능력이 없었기에 무사할 수 있었으나,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은 고트족과는 다르게 공성전에도 능숙했다. 동로마 정부는 442년에 굴욕적인 평화 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 조약은 연공으로 황금 1,400 파운드를 지급하는 조건을 포함하고 있었다. 아틸라가 처음에 씹어버린 연공 조건이 700 파운드였으며, 이것이 그전 해의 350 파운드를 두 배로 늘린 조건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3년 만에 연공이 네 배로 늘어난 것이다. 또한 로마는 훈족 사이의 내분에서 패배하여 로마로 망명해있던 훈족의 망명자들을 다시 훈족에 인도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