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훈족 (문단 편집) ==== 옹호론 ==== 다음은 흉노가 어떤 형태로든(혈통적 연관이든, 문화적 동질감이든, 정치적 계승이든) 훈과 관련이 있다는 설의[* '동족론'이라고도 불리는데, '동족'이라는 말에 오해가 있을까봐 첨언하자면, 지지자들도 흉노와 훈이 완전히 동일하다는 데 일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동 과정에서 혈연적•문화적 이질성이 나타났다는 데는 동족론 지지자들도 큰 이견이 없다.] 근거들이다. * 최소한 양자의 이름이 동일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선, '''양자의 이름이 동일하다는 것은 입증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313년, [[소그드인]] 상인은 간수 회랑에서 사마르칸트로 보내는 편지에서, 중국의 남흉노 집단을 '훈'(Xwn)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 이름은 유럽의 '훈'(Hun)과 관련이 있다. 이것이 '흉노'(ʿχiʷongʿnuo)와 연관이 있을까? 이 연관성에 대해 중국어 음운학자들은 큰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고, 흉노가 중앙아시아에 출연한 이후 언제나 이와 같이 불렸기에 '''다른 기원이 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고대 소그드인의 편지 이외에도, 둔황의 월지인인 축법호(Dharmarakṣa)는 280년에《점비일체지덕경》[* 《漸備一切智德經》(Tathāgataguhya-sūtra)]을 산스크리트어에서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흉노를 '후나'(Hūṇa)로 옮겼으며[* 산스크리트어 판본은 현존하지 않으나, 티베트어 번역에서도 마찬가지로 'Hu-na'로 적혀 있다.], 308년에 번역한 《보요경》[* 《普曜經》(Lalitavistara)]에서도 똑같이 옮겼다[* 산스크리트어 판본이 현존하고 있다]. >---- >Étienne de la Vaissière, “Xiongnu,” Encyclopædia Iranica, online edition, 2006, available at [[http://www.iranicaonline.org/articles/xiongnu]] (accessed on November 15, 2006). * 흉노는 [[튀르크]]계 언어를 썼으며, 훈족 또한 튀르크계 언어를 썼다.[* 튀르크어와 몽골어에 비슷한 단어가 있는 것은 [[언어동조대]]일 가능성이 높다.][* 어족의 일치는 곧 같은 계통의 민족임을 뜻한다.] 유럽 역사서에 남아있는 훈족 왕족의 이름은 튀르크 계통의 언어(아틸라 등), 아랍 지역에 남아있는 훈족 추장의 이름도 튀르크 계통의 언어(카프간 등)이다. * 흉노와 훈은 중국과 유럽의 기록에서 동일한 민족으로 [[교차검증]]이 되는데,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 표시된 훈족의 거주 지역과 중국의 《[[위서(역사책)|위서]]》를 비롯한 역사서에서 언급하는 흉노의 출현 지역이 상당 부분 일치한다. [[소그드인]][* 고대 [[실크로드]]를 지배하고 장사하던 [[이란]]계 민족]이 [[선비(민족)|선비]] [[탁발부]]가 세운 [[북위]]의 황제에게 올린 상소에는 [[영가의 난]][* 남흉노의 족장 [[유연]]이 반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훈족이 [[낙양]]을 함락하고, 소그드족 상인들을 붙잡았다."''' 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서기 4세기 말이나 서기 5세기 초에 제작된 성(聖)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라틴어 지도에는 ‘후니스키타이’(Huniscite)란 이름이 ‘세레소피둠’(Seresoppidum, Sera Metropolis), 즉 중국의 부근에 기재되었는데, 이 지도는 기원전 7년 8월에 제작된 로마 지도와 아크리프의 세계지도(Orbis Pictus)를 인용•참고한 것이었다. 이것은 기원전에 유럽인들이 이미 동아시아의 '흉노'를 '훈'으로 알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물론 아래의 반론에서 말하듯, 유목집단이 활동무대가 겹치는건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똑같은 이름을 쓰는 두 집단이 똑같은 활동 무대를 가진다면, 그것은 관련성을 결코 쉽게 부정할 수 없다. * 흉노와 훈족이 남긴 '''동복'''(=구리 솥)의 유물 분포를 보면 시대적으로 동유럽, 중동, 우크라이나 (이때는 흉노가 아닌 이란계 스키타이족)→중앙아시아→ 내몽골 → 중국 화북 →서유럽의 순서로 이어진다. 구리 솥 양식의 일치는 곧 흉노와 훈족이 같은 양식으로 음식을 지어먹을 만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증거가 되며, 시대적으로도 흉노에서 훈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훈족이 흉노의 유민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 흉노의 지도자는 '''선우'''로 선우는 스스로를 '하늘의 아들'로 칭했다. 흉노 선우가 하늘의 아들이라 칭했듯이, 아틸라도 스스로를 '하늘의 아들'로 칭했다고 한다.(김종래, 《유목민 이야기》 중). 하늘의 아들이라 자칭하는 문화는 몽골 계열 유목민족들의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서, 흉노와 훈의 연관성을 알려주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