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한국에서의 학살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파일:external/cfs8.blog.daum.net/48b16ed405d23&filename=%ED%95%9C%EA%B5%AD%EC%97%90%EC%84%9C%EC%9D%98%ED%95%99%EC%82%B4.jpg]] [목차] == 개요 ==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1951년에 제작된 그림으로, [[6.25 전쟁]]이 소재인 작품으로 추정된다. == 쟁점 == 문제는 '''한국에서의 학살'''이 정확히 어느 진영의 학살을 묘사한 것인지 알려져있지 않아 국내에서 정치 성향에 따라 해석이 갈린다.[* 일각에서는 [[피카소]]가 공산주의자이고 자본주의 진영을 비판하는 작품을 많이 그렸기 때문에 이 작품이 미군이나 국군, 혹은 서청 등의 극우 테러집단에 의한 학살이 모티브라고 주장하기도 하나 [[피카소]]는 남침을 승인했던 [[스탈린]]이나 북한을 대규모로 지원했던 [[마오쩌둥]]도 매우 혐오했다.] 흔히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혹은 [[신천 양민 학살]]을 주제로 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조선일보]] 사설에서 강규형 교수는 [[피카소]]의 공산주의 활동과 관련해 [[https://www.chosun.com/opinion/contribution/2021/06/01/PGD2YF5PKFAWFGR27TPVESLJWM/|공산주의 진영의 허위 선전물]]이라 주장하였으나, [[한겨레]]에서는 [[신천·재령군 봉기|신천 학살]]과 연관성이 없는 작품이라고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001288.html|분석]]하며 위 기사를 주장하였다. 피카소의 반군국주의, 반전주의 성향으로 보아, 그냥 학살 전체를 비판하였던 듯. 하여간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그린, <게르니카>와 함께 그의 대표적인 반전 작품 중 하나로, 당시 '미군을 학살자로 묘사했다'는 주장도 생기는 바람에 한국에선 1980년대까지 금지 예술품이기도 했다[* 사실 한국전쟁 중에는 국군과 미군은 물론이고 인민군과 중공군, 심지어는 정치깡패인 [[서북청년단]]에 의해 벌어진 학살사건도 부지기수였다. 사실 이 작품이 금지작품이 된건 단순히 미군을 학살자로 묘사해서가 아니라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에서 좌파정부를 지지했던 것도 한 몫했다.]. 물론 '''누가 누구에게 했든 학살은 학살이다.''' 브루스 커밍스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은 그 표지에 이 그림을 쓰고 있다. == 기타 == 2021년 5월 피카소 작품의 한국 전시 당시 같이 들어와 한국에서 전시되었다. 작품의 구도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 [[에두아르 마네]]의 <막시밀리안의 처형>의 구도에서 따온것으로 추측된다.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국내에서는 민주화 이전인 5공화국 시절까지는 존재를 부정당했던 작품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미군과 국군을 학살자로 묘사했다는 이유였는데 사실 직접적인 이유는 피카소가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군사정권 시절에는 크레파스 이름에 피카소를 썼다는 이유로 안기부에 잡혀가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분류:실화 바탕 그림]][[분류:1951년 작품]][[분류:6.25 전쟁/창작물]][[분류:파블로 피카소]]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