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중공업 (r16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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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옛 대우그룹의 중공업 부문 계열사로, 현대두산인프라코어와 대우조선해양의 뿌리이며 현대로템과 한국항공우주산업의 공동전신이기도 하다.
존속 당시 홈페이지 도메인은 'www.dhiltd.co.kr' 이었다.
2. 역사[편집]
1937년 일본 요코야마공업소,[1] 모리콘체른 등의 주도로 경기도 인천부에서 설립된 조선기계제작소가 시초다. 설립 이래 디젤 차량 및 엔진을 위주로 제작했으나 태평양 전쟁 시기엔 인천육군조병창 관리 하에 잠수함을 건조했고, 특히 말기엔 일본 육군의 의뢰로 삼식잠항수송정을 발주받은 적이 있다. 일제하 조선기계제작소에 관한 이야기는 배석만 인천대 교수의 2009년 논문과 이성진 교사의 인천뉴스연재물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1945년 8.15 광복 후 귀속재산으로 분류되어 상공부 관할이 되었다. 이후 관리권이 국방부와 상공부를 오가다가 1963년, '한국기계공업주식회사법' 제정에 따라 한국기계공업으로 재창립한 뒤 1966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1968년에 신진자동차가 경영에 참여해 민영화되었다. 1973년 부곡차량 인수합병 후 1975년 신진그룹에서 분리되어 은행관리로 넘어갔다.
1976년 대우실업에 인수된 후 대우중공업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977년 공작기계공장, 1978년 기술연구소를 각각 세웠다. 1984년 항공사업부문 신설 후 1988년 자회사 한국산업전자를 세웠고, 1989년 유럽현지법인을 세우고 1994년 대우조선을 합병하여 조직을 기계-조선-자동차[2] 3개 부문으로 재편하여 독립채산제도 도입했다. 1999년도에 자동차 사업부문을 대우자동차 승용차부문에 이관하고 같은 해 빅딜을 통해 현대, 삼성, 대우, 한진 4사의 철도사업부문[3] 과 항공사업부문을 한국철도차량, 한국항공우주산업으로 합쳤다. 대우그룹 해체 후 채권단 관리를 받다가 2000년은 기계부문이 '대우종합기계', 조선부문이 '대우조선'으로 각각 분할되면서 잔존법인으로 남아 정리절차를 거쳤고, 2001년 상장폐지된 뒤 2005년 4월 1일 파산선고를 받아 2013년 법인이 완전 해체됐다.
대우중공업의 두 축이였던 종합기계와 조선해양은 20년 가까이 나뉘어 살다가 여러 사정 끝에 모두 현대중공업에 인수되어 만나게 될 뻔 했던 적이 있다.
다만, 대우종합기계의 후신인 두산인프라코어가 두산그룹의 경영난을 겪으며 여기저기로 분할 매각되어서 온전한 결합은 아니다. 팔려나간 굵직한 사업부만 해도 지게차사업부[4] , 공작기계사업부[5] , 방산사업부[6] , 엔진사업부[7] 가 있다.
- 수도권 전철 7호선 7000호대 전동차 (701~717편성) 1차분 VVVF-GTO
- 서울교통공사 8000호대 전동차 (801~815편성) 1차분 VVVF-GTO
3. 역대 총괄임원[편집]
[1] 당시 네즈재벌 계열사.[2] 국민차, 트럭, 버스[3] 삼성은 제외[4] 매각된 후 (주)두산이 다시 사들였다가 두산밥캣의 자회사로 재매각.[5] 두산공작기계로 두산의 이름은 쓰고 있으나 사모펀드가 최대주주다.[6] 한화디펜스로 매각[7] HSD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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