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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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리투아니아의 영화. 발트 3국 영화 중 가장 앞서있다고 평가받는다.
리투아니아의 영화 중심지는 빌뉴스와 카우나스로 이원화되어 있다. 이는 폴란드 제2공화국이 빌뉴스를 강탈했던 시절의 흔적이다. 빌뉴스를 폴란드가 강탈하면서, 영화학교 등 영화 인프라를 카우나스에 깔았던 것이 21세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2. 영화 시장[편집]
2017년 기준으로 2,040만 유로의 수입을 거뒀다.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는 1.54회로 독일 영화 시장의 수치와 비슷하다.
3. 역사[편집]
3.1. 러시아 제국[편집]
1896년 처음으로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영화 상영이 있었다. 1909년 Antanas Račiūnas과 Ladislas Starevich 감독으로 최초의 리투아니아 영화가 제작되었다.
3.2.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편집]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리투아니아는 독립하였다. 1921년 폴란드 제2공화국이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를 강탈[1] 하면서, 1795년 멸망때가지 폴란드-리투아니아로 한 나라이던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관계는 매우 험악하게 변했다. 1926년 임시수도 카우나스에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영화학교를 설립하였다.
3.3. 소련 지배[편집]
1940년 리투아니아는 소련에 합병되었다. 이후 리투아니아의 자체적인 영화는 소련 붕괴 때까지 정체된다.
3.4. 1990년대[편집]
1989년 동유럽 혁명의 여파로 탈린부터 빌뉴스까지 "인간 띠 잇기"를 통한 노래 혁명으로 발트 3국은 1990년 소련에서 분리독립한다. 이후 리투아니아 제2공화국은 재빨리 영화 산업 복원에 나서서 빠르게 영화 산업이 성장했다.
3.5. 2000년대[편집]
성장하던 리투아니아 영화 시장은 대침체가 닥치기 이전인 2006년부터 침체를 맞기 시작한다. 외형 성장과 내실 모두가 부실해졌다는 평을 받았다.
3.6. 2010년대[편집]
라트비아 영화나 에스토니아 영화와 달리 최악의 시점에서도 리투아니아 영화 시장에서 자국영화 점유율은 10%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2015년 유로존 가입으로 유로존의 지원을 받으며 다시 리투아니아 영화가 성장하고 있다.
4. 영화 감독[편집]
5. 영화 작품[편집]
6. 영화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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