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메이도프 (r2판)

편집일시 :

버나드 로렌스 "버니" 메이도프
Bernard Lawrence "Bernie" Madoff
(1938년 4월 29일 ~ 2021년 4월 14일)
파일:메이도프.jpg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역임한 증권 거래인, 유대계 대학 이사장을 역임한 유명한 유대계 미국인이자,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사기 주동자.

메이도프는 미국에서 인정받는 투자자였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투자를 해 자수성가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건 메이도프 가족재단을 만들어 각종 자선활동을 하며 여러 단체에 매년 막대한 양의 기부금을 지원했고 자신의 아들이 암에 걸렸을 때 5억 달러를 암 연구에 지원하기도 했다. 이렇게 능력 좋고 인격도 훌륭한 인물로 모두에게 존경받으며 살고 있었지만 미국이 대공황을 겪게 되고 경제가 침체되면서 메이도프의 진실이 드러났다.

메이도프는 주식 브로커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주식 투자를 했으나 큰 수익을 올리지 못했고 생각을 바꿔 돈이 많은 투자자들을 찾아 나섰다. 메이도프는 유대인이었고, 폰지사기라는 것이 발각되기 전까지만 해도 유대계의 롤모델처럼 취급받았다. 이 때문에 부유한 부자들이 모이는 장소들을 찾아가 자신이 다른 투자자들에게 인정받는 주식 브로커라고 하며 자신에게 투자를 하면 돈을 불려서 매달 10%에 해당하는 이윤을 주겠다고 하며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을 때, 유대인 공동체의 신용을 기반으로 할 수 있었고, 투자한 사람들의 상당수도 유대인이었다. 실제로는 메이도프는 돈을 투자받은 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러 투자자들에게서 투자금을 받고 원금의 10%로만 꼬박꼬박 돌려줬을 뿐이다. 하지만 메이도프를 믿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 돈이 부족하지도 않았고 메이도프의 명성을 믿고 원체 많은 사람들이 메이도프에게 투자를 했으며 원래 돈이 많은 사람들이라 갑자기 돈을 다시 돌려달라는 요청하는 일도 많지 않아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경제 악화로 사람들이 단체로 원금 상환을 요구하면서 메이도프의 사기는 끝을 맞이했다.

피해액은 약 650억 달러에 달하며 스티븐 스필버그, 케빈 베이컨, 뉴욕 메츠의 구단주 프레드 윌폰 같은 유명인사들도 메이도프의 고객이었는데, 이들의 상당수도 유대계였다. 많은 투자자들은 비관하고 자살을 택했다. 메이도프는 법원으로부터 150년 형을 받고 감옥에 복역중이며 장남은 사람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고 차남은 암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그리고 본인도 2021년 4월 14일, 본인도 연방교도소 의료시설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죄에 비하면 너무나도 편안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