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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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
발매날짜 2012년 9월 14일
트랙곡명가수
1Peka쾅프로그램
2날 믿지마서교그룹사운드
3너의 밤에서교그룹사운드
4보초를 서다가 사랑에 빠졌네악어들
5벌레악어들
6빠닥새 개새끼노컨트롤
7사막으로 가는 길파렴치악단
8일요일파블로프
9철창살밤섬해적단
10정일봉 육봉밤섬해적단
11황장엽 피자파티밤섬해적단
12에릭 김정철밤섬해적단
13김정일카섹스밤섬해적단
14미친리성웅무키무키만만수
15온몸에 뜨겁고 더운물 끼얹네팔보야마
0사람이 되는 날회기동 단편선

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파블로프의 오도함과 박준철이 만든 공연 기획 그룹 '더 아웅다웅스'가 인디밴드, 가수들을 모아서 제작한 앨범으로 밤섬해적단, 팔황단, 한받, 무키무키만만수, 쾅프로그램 등 많은 인디 가수들이 참여한 앨범이다. 밤섬해적단의 앨범 김정일카섹스의 수록곡인 징일봉 육봉,황장엽 피자파티, 철창살, 에릭 김정철 등이 시작된 노래이기도 하다.

2. 상세[편집]


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우리가 '북한'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펑크Punk록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사람은 인민들의 '록 스타'가 되었을까, 아니면 서방세계의 날라리 음악을 연주한 자본주의의 앞잡이라며 인민재판을 받았을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사는 곳보다 북쪽, 평양에는 '리성웅'이라는 인물이 살고 있었다. 그는 소련 유학파 출신 장군의 외아들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소련에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마침 소련 유일의 록 클럽이 운영되고 있던 ‘레닌그라드’ 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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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서 록 음악을 접한 리성웅은 평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함께 지하에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테이프에 자신이 만든 곡을 녹음하여 유포하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그 노래들은 남아있지 않고 여기에 리성웅의 일기와 함께 그에 대한 증언들을 모아 보았다.

* 리성웅 연보

1964년 김일성 군사대학을 나와 소련 프룬제 군사학교를 졸업한 인민무력부 소속 ‘리명훈’ 장군의 아들로 출생

1982년 상트 페테르스부르크(레닌그라드)에 위치한 프룬제 해군대학에 입학

1982년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서 빅토르 초이의 그룹 '키노'를 만남[2]

1986년 소련의 정책 변화로 인해 귀국

1990년 빅토르 초이의 죽음을 추모하는 의미로 평양에서 첫 콘서트를 개최[3]

1991년 공연 횟수가 늘어가면서 1달마다 한번 은밀하게 공연을 진행

1991년 겨울, 장교 아파트에서 데모테이프를 녹음

1992년 프룬제 군사학교 출신의 쿠데타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 ‘리명훈’이 숙청당하게 된 후 종적이 묘연


북조선의 펑크 록커 리성웅이 부른 노래들이라는 설정으로, 2012년 3월 23일 7시,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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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는 모스크바스베들로프스크(현 예카테린부르크)에도 락 클럽이 존재하였으니 틀린 서술. 다만 레닌그라드 락 클럽이 제일 유명하고 또 영향력이 세긴 했다.[2] 당시 키노는 빅토르 초이와 알렉세이 리빈 2인조로 구성되어 있던 상태로, 첫 앨범을 갓 찍어낸 무명 밴드였다.[3] 실제 빅토르 초이는 1990년 8월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