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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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가톨릭 교회의 성토요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 옆에 머물러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저승에 감을 묵상하는 전례일이다.[1] 이날 가톨릭 교회는 기도와 단식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다린다.[2] 성토요일은 전례력 기준으로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과 더불어 미사가 없는 날이며, 주님 만찬 성목요일과 주님 수난 성금요일과 주님 부활 대축일과 더불어 전례주년 전체의 정점으로 빛나는[3] 파스카 성삼일을 이룬다.
2. 성토요일의 교리[편집]
가톨릭 교회 교리서 열람 가능한 곳
▲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관한 천주교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의 설명
2.1.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편집]
가톨릭 교회는 위와 같이 고백한다. '저승'은 성경에서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전에는 '고성소(古聖所)'라고 하였는데, 옛적(그리스도 이전)에 거룩하게 살다 죽은 사람들이 있던 곳이라는 뜻이다.[4] 성경에 드러난 여러 구절로부터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미사 통상문」 19항 사도 신경.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곳에서 한 일을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요약하면, 가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이들의 거처인 저승으로 내려가서 죽음과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히브 2,14) 악마를 멸망시키셨다는 것을 고백하고,[5] 예수 그리스도보다 앞서 간 의인들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 주었다고[6] 가르친다.예수님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1코린 15,20)고 하는 신약 성경에 자주 나오는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죽은 이들의 거처에 머물러 계셨다는 사실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이것은 사도적 설교가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신 사실에 부여한 첫째 의미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겪으셨고, 그 영혼은 죽은 이들의 거처에서 그들과 함께 계셨다. 그러나 그분은 그곳에 묶여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구원자로서 그곳에 내려가신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632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중략)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승에 가 구해 내신 것은 아브라함의 품에서 자신들의 해방자를 기다리던 거룩한 영혼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에 떨어진 이들을 구하거나 저주받은 지옥을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보다 먼저 간 의인들을 해방시키고자 저승에 가신 것이다.
“죽은 이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1베드 4,6).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심은 구원의 복음 선포의 충만한 완성이다. (중략)
결국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나게”(요한 5,25) 하시고자 죽음의 심연으로 내려가셨다. “생명의 영도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다”(히브 2,14-15). 이제부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계시며”(묵시 1,18),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을 것이다”(필리 2,10). (중략)
『가톨릭 교회 교리서』 633-635항. 원문 링크: 633항, 634항, 635항.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2. 세례성사와의 관계[편집]
성토요일의 신비는 세례성사의 의미와도 연결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것은 세례성사 때 우리가 물에 잠기는 것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만 묻힌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함께 묻힌 것이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을 받아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할 수 있다. 그래서 성토요일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도 함께 죽고 묻혔다.'라고 묵상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이는 아래의 교리로부터도 드러난다.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간절히 비오니,
당신 외아들이 땅속에 내려가시고,
거기서 영광스럽게 오르셨으니,
신자들도 세례 안에서 그분과 함께 묻히고 함께 일어나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성무일도』 성토요일 시간 전례의 마침 기도.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세례의 본래적이고 온전한 표징은 물에 잠기는 것이다. 물에 잠기는 세례는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하여 죄에 대해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에 묻힘을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가톨릭 교회 교리서』 628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3. 첫 토요일 성모 신심[편집]
이 복음에서 보듯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를 가장 깊이 새긴 사람이 바로 성모 마리아이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날 것을 기다리는 신앙의 모범을 보였는데, 그러한 성모 마리아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릴 수 있는 날이 바로 성토요일이다.그들이 그곳을 떠나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마르코 복음 9,30-32.
이러한 영성으로부터 가톨릭 교회 안에 생긴 관습이 있으니 바로 매달 첫 토요일에 거행하는 성모 신심 미사이다.
3. 거의 모든 성사가 없는 날[편집]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를 종종 '성토요일 미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역시 잘못된 용어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성토요일에) 교회는 미사를 드리지 않고, 제대는 벗겨 둔다.
『로마 미사 경본』 357면, 성토요일 2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따라서 흔히 사용하는 '성토요일 미사'라는 말은 '미사 없는 날 거행하는 미사'라는 허무맹랑한 뜻이 된다. 그러므로 성주간 즈음 주보나 게시문을 통해 성삼일 전례를 공지할 때, '성토요일 미사'와 같은 표현 대신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라는 표현을 써야 올바르다.
가끔 성토요일 오후 시간에 세례성사를 거행하는 곳이 있다. 세례성사를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에 거행하는 본래의 모습을 따르자니 미사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세례성사를 따로 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이날과 다음 날에는 오랜 관습에 따라 교회는 고해성사와 병자 도유를 제외하고 모든 성사를 거행하지 않는다.
『로마 미사 경본』 336면, 주님 수난 성금요일 1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여기서 말하는 이날과 다음 날은 각각 주님 수난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이다.
그러나 위 지침에서 보듯 성토요일에는 고해성사와 병자 도유를 모든 성사를 거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례성사는 파스카 성야 중에 하든가 부활 시기 중 적절한 때에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앞 문단에서 언급한 성토요일과 세례성사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세례성사를 부활 대축일 이후가 아닌 성토요일 중에 거행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4. 시간 전례[편집]
4.1. 특징[편집]
아무리 미사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라고 해도, 성토요일은 엄연히 전례일의 등급과 순위 표 중 최상위 등급을 가진 파스카 성삼일에 속한 전례일이다. 이를 반영하듯, 성토요일의 시간 전례는 즈카르야의 노래와 마리아의 노래를 제외하면 통상문 부분을 차용하는 부분이 없이 모두 그날 고유 기도로 채워져 있다.
보통 때의 (이어지는 주일보다 등급이 낮은) 토요일 시간 전례는 저녁 기도가 없고, 이어지는 주일 시간 전례는 제1 저녁 기도로 시작한다. 그러나 성토요일 시간 전례는 아침 기도 뿐 아니라 저녁 기도도 가지고 있다. 즉, 이때의 토요일 저녁 기도는 주님 부활 대축일에 속하지 않고 성토요일에 속한다.
4.2. 아침 기도[편집]
초대송을 바치지 않는다면 시편 70(69),2로 시작한다. 이어서 바치는 찬미가는 다음과 같다. 4절에는 앞의 여러 문단에서 설명한 교리가 담겨 있다.
이어지는 구성은 다음과 같다.
4.3. 저녁 기도[편집]
시편 70(69),2로 시작하여 다음의 찬미가를 바친다. 아침 기도의 찬미가와 마찬가지로 이 찬미가의 2~3절에는 앞의 여러 문단에서 설명한 교리가 담겨 있다.
이어지는 시편 기도 본문은 시편 116(114-115),10-19, 시편 143(142),1-11, 필리 2,6-11로 구성되는데 이는 전날인 주님 수난 성금요일 저녁 기도와 동일하다.
이날 시간 전례(독서 기도, 아침 기도, 삼시경, 육시경, 구시경, 저녁 기도)의 마침 기도는 모두 '세례성사와의 관계' 문단에서 소개했던 기도를 사용한다.
5. 여담[편집]
- 성토요일에는 미사가 없다. 그런데 '미사=전례'라고 착각한 나머지 '성토요일에는 전례가 없다.'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토요일 시간 전례가 있으므로 성토요일에도 전례는 있다. 사실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를 '성토요일 미사'라고 말하는 이들이 워낙 많은 현실에서는 '성토요일에는 전례가 없다.'라는 정도만 해도 파스카 성삼일의 전례력 구조를 상당히 깊이 인식하는 셈이다.
- 한국 교구 성당 중 정기적으로 시간 전례를 바치는 곳은 매우 드물기에 성토요일 오전의 성당 풍경은 정말 조용하다. 이날의 오후는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준비로 분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