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베이커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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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60년부터 활동한 배우로써 로버트 올트먼, 폴 토머스 앤더슨, 데이빗 핀처, 라스 폰 트리에 등 유명 감독의 작품에 출연했으며, 영화와 드라마, TV 영화 작품 대부분에 조연으로 출연한 배우다.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태어났고, 어머니 앨리스 버딘과 아버지 윌리엄 알렉산더 홀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출신의 공장 노동자였다. 1931년 9월 10일에 대공황 시절 톨레도 북쪽 끝의 슬럼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교육을 받았고 10년 동안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필립 베이커 홀은 톨레도 대학교에 다닐때 연기에 빠졌으며, 연기 교수로부터 격려를 받았고, 독일에서 미국 육군 통역사로 일하면서 극단 연출가로도 활동했다. 이 때 대비책으로 교사 자격증을 땄다. 메리 엘라 홀스트와 결혼해 두 딸을 두었다. 1957년에 오하이오로 돌아와서 라디오 아나운서와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아내 메리의 지원으로 뉴욕으로 옮겨 오프 브로드웨이와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서 15년 동안 일했었고[1] , 도중 1966년 메리와 이혼하고, 1973년 다이앤 루이스와 결혼하고 1975년 LA에 정착했다. 1976년에 이혼했다. 1981년에 홀리 울플과 결혼해서 두 딸을 두었고, 필립이 별세할 때까지 같이 살았다.
존 F. 케네디가 미국, 서유럽, 동유럽, 남미 간의 문화 교류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레퍼토리 극단을 설립했는데 헬런 헤이즈, 준 해벅 등의 배우들이 해외에서 공연할 수 있었다. 남미 순회 공연 때 로이 샤이더와 같이 단역을 맡았는데, 이 경험이 큰 전환점이 됐다고 한다. 세컨 시티 극단 일원이었던 것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30세까지 연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60년부터 연극 배우로 활동했고, 1970년 <자브리스키 포인트>로 영화 데뷔를 하고 1975년 <이머전시!>의 의사 스콧으로 나와 TV 데뷔를 했다. 거친 저음의 목소리가 특징이다.
1984년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리처드 닉슨의 말년을 다룬 1인극 <은밀한 영광>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로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최우수 솔로 퍼포먼스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데뷔 단편 <담배와 커피>에서 나왔다. 이걸 장편으로 만든 <리노의 도박사>로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유작은 2020년 넷플릭스 드라마 <메시아>이다.
2022년 6월 12일에 폐기종으로 사망했다. #
2. 필모그래피[편집]
2.1. 영화[편집]
2.2. 드라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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