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전투(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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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전투
Battle of Gaza
معركة غزة
}
파타-하마스 분쟁의 일부
기간
2007년 6월 10일 ~ 6월 15일
장소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교전국 및 교전 세력
하마스
파타
병력
이즈 앗딘 알카삼 여단
팔레스타인 보안군
피해
군인 120명 사망
민간인 39명 사망
약 700명 이상 부상

1. 개요
2. 배경
3. 전투



1. 개요[편집]


팔레스타인하마스파타 사이의 벌어진 전투.


2. 배경[편집]


2004년 11월 11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초대 대통령이 사망해 2005년 1월 9일대통령 선거를 통해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마흐무드 압바스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어 4년 임기가 시작되었다. 당시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이슬람 투쟁 운동이 선거를 보이콧 했었다.

2006년 1월 25일, 총선에서 하마스가 파타를 누르고 132석 중 74석을 확보하면서 다수당이 된다. 당시 이스라엘미국은 이들과 호의적이던 파타가 지속적으로 권력을 가질 것을 기대했으나 이를 뒤엎었고 1월 27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슬람 군부 정당인 하마스의 승리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거절이라고 본다고 발표했다.

1월 30일, 미국, 러시아, 유엔, 유럽연합으로 이뤄진 중동평화협상 쿼텟은 하마스의 승리를 축하하며 평화를 위해 비폭력적이고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등 평화 로드맵을 지속해 나가기를 요구했고 하마스는 이를 거부하게 된다. 파타는 이로 인해 하마스와 통합 정부를 구성하기를 거부했다. 결국, 3월 26일이스마일 하니예가 총리로 임명되면서 하마스가 다수인 행정부를 구성했다. 한편 압바스 대통령은 기존의 평화 로드맵이 하마스에 의해 진행이 안되는 상황이 지속되어 국제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압바스 대통령은 하마스와 지속적인 충돌이 있으면서 압바스 대통령은 주기적으로 하니예 정부를 해산할 것이라고 압박을 주었다. 또한, 가자 지구의 방위군을 대통령 직속 산하 부대로 편입시키고 대통령 경호부대도 90명에서 1,000명으로 키우게 된다. 하마스는 이에 대응해 행정부군 설치해 이즈 앗딘 알카삼 여단 출신 군사들을 편입시켰다.

하마스는 이란시리아로부터 지원을 받아 행정부군을 6,000명으로 규모를 키웠고 압바스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대태러훈련 등을 실시하게 된다.

10월 경, 미국, 이스라엘, 아랍 국가들과 압바스는 하마스가 쿼텟이 제시한 평화 로드맵을 거절할 시 무력으로 하마스를 축출하기로 결정한다.

12월, 압바스는 새로운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요구했으나 하마스와 파타 모두 거절했다.

2007년 2월 8일, 파타와 하마스는 파타-하마스 메카 합의를 통해 군사적 대립 관계를 완화하고 통합 정부 설립하기로 하고 3월에 통합 정부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6월 중, 하마스는 압바스와 파타가 팔레스타인 대통령 부대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3,500명으로 규모를 키워 가자 지구를 장악하려고 한다고 믿게되면서 갈등이 다시 시작되었다.

3. 전투[편집]


6월 10일, 파타와 결탁한 부대와 하마스와 결탁한 부대가 충돌했다. 하마스의 대원들은 파타의 회원들을 체포했고 이중 대통령 경호부대원 한명을 15층 아파트에서 떨어뜨려 죽였다. 이에 파타는 가자 모스크의 이맘을 살해하고 하니예 총리 집에 총을 발포했고 하마스 대원을 똑같이 고층 빌딩에서 떨어뜨려 죽였다.

6월 11일, 압바스 대통령과 하니예 총리의 집이 서로의 타겟이 된다.

6월 13일, 하마스가 북가지 지역의 팔레스타인 보안군 본부를 공격했다.

6월 14일, 압바스 대통령은 통합 정부를 해산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마스가 남부의 라파흐 지역을 장악했다.

6월 15일, 하마스가 가자 지구 전체를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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