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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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탕진의 아름다운 풍경
1. 개요[편집]
중국 저장성의 지급시로, 별칭은 화성(禾城)이다. 약칭으로는 禾 혹은 嘉라고 쓰며, 자싱이라 부르기 전에는 유권(由拳), 화흥(禾興), 수주(秀州)라고 불렸다. 자싱은 남쪽으로 쳰탕강(钱塘江) 남서쪽 항저우, 샤오싱, 닝보와 접해있으며, 서쪽으로는 후저우, 서북으로는 쑤저우, 동북으로는 상하이와 접해으며, 동으로는 항저우 만 건너편 저우산시를 바라보는 고대때부터 교통의 요충지이다.. 이 지역을 항자후평원(杭嘉湖平原)이라고 하며 중동부에 위치해 지형이 매우 평탄하다. 수나라 양제때 부터 이용한 베이징-항저우 운하가 자싱을 대각으로 가로질러 흐르며 강, 항구, 호수로 빽빽하게 덮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싱의 대학교인 가흥남호학원을 중심으로 보통 왼쪽 슈후(秀湖)를 중심으로 부촌이 형성되었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난후(南湖)를 중심으로 빠바이빤(八佰伴)백화점, 완커광장(万科广场), 난후톈디(南湖天地)등 많은 상권이 우후죽순으로 발전하였다.
자싱시 내에 위치한 관광지로는 자산현(嘉善县)에 위치한 시탕쩐(西塘镇)과 통샹시(桐乡市)에 위치한 우쩐(乌镇)이 중국5A급여유경구로 유명하다. 시내에는 역시 5A급 여유경구로 난후(西湖)를 중심으로 자싱 시정부, 시경기장, 전람회장이 있어 한 도시에 5A급이 3곳이 있는것은 매우 드문만큼 역사와 문화가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난후 북쪽으로 당나라 때부터 있었던 즈청(子城)이 잘 복원돼있다. 서쪽으로는 또한 악비를 모시는 악왕묘가 있고, 도심 서남쪽 20km구석기 마자방(马家浜)유적지가 있다.
제1회 공산당 회의가 이루어졌던 배가 바로 난후에 있고, 현재 중국 정부의 뿌리도시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로부터의 많은 투자가 들어왔었다. 그 자금으로 가흥을 감싸는 고가도로가 지어졌다. 이전에는 복잡한 상하이, 항저우, 쑤저우를 떠나 온 부자들이 별장을 짓고 사는 경우가 많았으나, 현재는 자싱 시내 동쪽에 있는 중환동루(中环东路) 동쪽으로 커지청 지역과 시내 남쪽 창슈이루고가(长水路高架) 남쪽부터 자싱난역(嘉兴南站) 기차역까지 부동산 회사들의 대대적인 투자와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미 건설이 진행된 아파트들은 이미 다 완판되었다.
2. 역사[편집]
가흥은 7,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 남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이다. 태호문화지구(太湖文化地区)를 중심으로한 문명의 발생지중 하나인 마자방(马家浜) 문화의 발상지이다. 이곳은 중국의 모든 왕조의 식량창고 역할을 하여 '天下粮仓(천하 곡물창고)'로 불렸다.
춘추시대에는 이곳을 장리(張利) 또는 추리(槜李)로 불리우며 오(吳), 월(趙) 두나라가 이곳에서 수많은 전쟁을 벌였다. 전국시대에는 초(楚) 영토에 포함되었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이곳에 주천현(周泉縣)과 해염(海鹽縣)을 설치하여 회계군(會稽郡)에 속하게 하였다.
삼국시대 오나라가 들어선 이후에는 유권현(由拳縣)남쪽과 해염현(海鹽縣) 서쪽을 나누어 염관현(鹽官縣)을 설치하였다. 오나라 황룡 3년(231년), 황제 손권은“유권현에 야상벼가 스스로 자랐다(由拳野稻自生)"하여 길조로 여겨 그 땅의 이름을 유권에서 화흥(禾興)으로 고쳤고, 적오 5년(242년) 또 가흥(嘉興)으로 고쳤다.
수나라 양제때는 항저우에서 가흥을 거쳐 진강(鎮江)까지 이어지는 대운하를 파서 가흥에 농사와 교통의 혜택을 가져왔다.
당나라때는 가흥에서 27곳을 둔전 하였는데, "절강 서부 3개 고을 중 가흥이 가장 크다(浙西三屯,嘉禾为大)"고 하여 중국 남동부의 가장 중요한 곡물 생산지가 되었다.
난후 북안에 남아있는 당나라 대의 옛 성벽인 즈청 (嘉兴子城, 가흥자성)
북송 때는 이곳을 수주(秀州)라 불렀으나 가화군(嘉禾郡)으로 개칭하였고, 남송 영종 청원 원년(1195년)에 가화부(嘉禾府)으로 승격되었다가 나중에 가흥군(嘉興郡)으로 격하되었다.
명나라 선덕 4년(1429)에 가흥현을 쪼개 서북쪽을 수수현(秀水縣), 동북 변방을 가산현(嘉善縣)으로, 해염현(海鹽縣)을 나눠 평호현(平湖縣)을 세웠으며, 숭덕현(崇德縣)을 나눠 동향현(桐鄉縣)으로 설치하고, 가흥부 내 7현을 두어 1부 7현이라 하였다. 가흥부는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명나라 때 중서성(中書省)의 직할 관할하에 있었다.
명말청초, 순치 2년 음력 6월 26일(1645년 8월 6일)에 가흥의 군민 청나라식 변발을 요구하는 체발령(剃髮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여 이곳을 공격하였다. 성안에 진입한 청군은 전대미문의 학살을 진행하였고, 이전의 번영을 되찾지 못했다. 조사에 따르면 그 해에만 가흥에서는 50만 명이 학살당했고 가흥의 사회 발전, 경제, 문화 교류는 급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나라 중기에는 항저우만 해안을 따라 방조제가 여러 차례 건설되었으며, 가흥의 사회적 경제가 점차 개선되고 마을은 번영을 되찾아다.
강희제가 강남 순행 때마다 찾았다고 전해지는 연우루 (烟雨楼)
중화민국 11년(1921년) 8월 3일,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의 의제가 가흥(嘉興) 남호(南湖)에 떠있는 훙촨(红船)이라는 작은 배에서 완성되어 중국 공산당 개폐막, 즉 창립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후 이 난후는 공산당의 성지라고 불리게 되었고, 현재 난후 옆에는 난후혁명기념관(南湖革命纪念馆)이 들어서 있다. 1949년 5월 7일 국민정부가 쫓겨나면서 자싱시와 자싱현이 분리, 설치되었다.
이후 자싱시와 자싱현은 여러 차례 없어지거나 합병되기를 반복했다. 1983년 8월, 자싱지구 행정공서를 폐지하고 자싱시와 후저우시를 분리했다. 그리고 자싱시에는 시내 구, 교외 구를 설치하고, 자산현(嘉善縣), 핑후현(平湖縣), 퉁샹현(桐鄕縣), 하이닝현(海寧縣), 하이옌현(海鹽縣)을 관할하게 했다. 이 중 핑후현과 퉁샹현, 하이닝현은 현재 자싱시 내 현급시(市)로 승격되었다.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회의가 열린 배인 훙촨(红船). 현재는 난후혁명기념관(南湖革命纪念馆)으로 개조한 상태이다.
3. 한국과의 관계[편집]
자싱의 김구 피난처. 주소는 난후 메이완제(梅灣街) 76호, 내부는 생가 겸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또한 임시정부 인사들이 지낸 가택이 아직 보존되어있다.
자싱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데,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가 일제를 피해 자싱의 국민당 관료 추푸청의 양자 천퉁셩의 집에서 수십일간 머물렀다. (金九避難處, 김구피난처)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 중국 양국 정부와 효성그룹 등 한국 기업의 후원으로 김구 선생 피난처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숙소가 복원되어 있으며 1999년엔 강원도 강릉시와 자매도시가 되었다. 그래서 강릉대학교에서 자싱난후학원으로 매년 교환학생이 온다.
또한 자싱에는 앞서 언급된 효성그룹과 한국타이어의 공장이 위치해 있다.
김용(1924)의 대하역사소설 사조영웅전 1부의 무대이기도 하다.4. 경제 및 특산품[편집]
자싱은 비단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고, 양모를 포함한 직물이 생산된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가죽제품 수출지 중 한 곳이다. 기계, 화학, 전자산업도 이곳에 있다. 중국 동부의 중요한 에너지 기반 지역으로 중국 자체 내에서 지어진 첫 원자력발전소인 친산원자력발전소가 하이옌현에 위치해 있다.
중국에서 단오절에 먹는 쭝쯔로 아주 유명하며, 제작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곳도 관광지로 존재한다.
난후 지역에는 레고 공장이 위치해 있다. 국내를 포함한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판매되는 레고 제품들은 거의 이 곳에서 생산된다.
5. 교통[편집]
자싱은 교통이 매우 편리하고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으며, 공도 등급이 높고, 도로 상태도 양호하다.
또한, 상하이-쿤밍 철도, 상하이-항저우 고속도로, 쑤저우-가흥 고속도로의 교차점에 있어 다른 지역으로의 교통도 매우 편리하다.
1시간 도착 구간 내에 상하이 홍교 국제공항, 상하이 푸둥 국제공항, 항저우 소산 국제공항 등 공항에 갈 수 있다.[1] 맞닿아 있는 도시에 존재하는 공항만 세 곳이지만, 자싱시 슈저우구(에 있는 군사공항[2] 을 민군 통합공항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2018년부터 하고 있으며, 2021년 개항 예정이였지만 미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2개의 활주로를 가지고 있으며, 개통이 되면 절강성의 9번째 민간공항이 될 예정이다.
자싱항, 항저우 항, 상하이 외고교항, 상하이 루차오항, 저우산항, 닝보항, 양산항 및 기타 대형 항구와 가깝다. 자싱 내에는 아직 지하철은 없지만, 자싱난역(嘉兴南站)과 도심을 연결하는 가흥궤도(嘉興軌道)[3] 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지하철이 생길수 있도록 지자체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자산현(嘉善县)에서는 쑤저우 철도 10호선, 상하이 철도 17호선을 자산까지 연장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저장성 차원에서는 9호선을 자싱까지 연장할 것을 제안했고, 난후구(南湖区)와 자산현은 공동으로 상하이 17호선과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속도로가 발달하지 않던 시절, 가흥은 주로 해상운송에 의존해 연간 2억 명의 승객을 수송했으나, 현재 철도는 매년 750만~80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며, 도로 여객 운송은 연간 3,900만~4,20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한다.
자싱시의 도시 대중교통은 연간 5,900만~6,45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한다.
현재 가흥시 이 수준의 자동차 수는 170만 대(개인용은 110만 대)이며 밀도는 자동차 1대당 2.8명 이다
5.1. 고속도로[편집]
*국도: 320국도(国道)
*성도: 101성도(省道), 202省道
*고속도로: G60후쿤고속도로(沪昆高速)[상하이-쿤밍을] , S11 자자수고속도로(乍嘉苏高速)[4] , G92항저우완환선고속도로(杭州湾环线高速), G1522창타이고속도로(常台高速), G15션하이고속도로(沈海高速), S12션지아후고속도로(申嘉湖高速), S9쑤타이고속도로(苏台高速),S13롄항고속도로(练杭高速)
5.2. 철도[편집]
후쿤철도(沪昆铁路)에 자싱역, 자싱동역, 마왕탕역이 설치되어있고, 후쿤여객용 철도로는 자싱남역(嘉兴南站)으로 연결된다.
현재 쑤자용철로가 이미 건설중이며, 자싱북역(嘉兴北站), 자싱남역(嘉兴南站), 하이옌서역(海盐西站)을 잇는다.
5.3. 청지꾸이따오(城际轨道)[편집]
항저우와 하이닝 시외철도(杭海城际铁路)가 2021년 6월 개통되었다.
현재 상하이-자싱시간 철도(沪嘉城际铁路)는 자싱남역과 쑹장을 연결하기 위해 건설 중이며 가흥남역(嘉兴南站), 차오좡역(曹庄站), 가흥커지청역(嘉兴科技城站), 샹자당남역(湘家荡南), 치싱역(七星站) 등을 지날 예정이다.
또한 상하이-핑후 도시간 철도(沪嘉城际铁路), 핑후와 상하이 진산현을 연결하는 시외철도를 건설 중이다.
현재 연구 계획중인 시외철도 구간으로는 하이닝-자싱 간 철도(海嘉城际铁路)로 이 노선은 항하이시외철도(杭海城际铁路) 비윈역(碧云站)에서 시작하여 자싱남역(嘉兴南站)에서 끝날 예정이다.
상하이-쑤저우-자산 도시간 시외철도는 자산역(嘉善站)에서 시작하여 상하이 훙차오기차역(上海虹桥火车站)에서 끝나며 공식적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야오좡(姚庄), 시탕(西塘), 칭푸(青浦) 등 지역을 통과할 예정이다.
5.4. 트램[편집]
가흥 트램은 총 길이 98km, 총 7개 노선을 계획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첫 번째 단계는 2019년 9월에 승인되었으며 총 길이 15.6km의 2개 노선이다. 1호선 시범구간(팡공로빈허로역(纺工路滨河路站)~가흥남역(嘉兴南站)은 10.6km로 2021년 6월 25일 14시에 개통되어 현재 운행중이다.
5.5. 수상운행[편집]
경항대운하(京杭大运河)
항션선(杭申线)
류핑션선(六平申线)
자자쑤선(乍嘉苏线)
후자션선(湖嘉申线)
6. 출신인물[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5 09:14:20에 나무위키 자싱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