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당/다른 정당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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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개혁신당과 다른 정당과의 관계를 정리한 문서이다.


1.1. 제3지대 연대론[편집]


2024년 제3지대론에 입각한 연대론에 관한 문서이다. 여당 인사들의 정계개편 움직임은 국민의힘 분당 문서를, 야당은 더불어민주당 분당정의당 분당 문서를 참고하는 편이 좋다.

  • 한국의희망양향자 대표
    • 2023년 12월 26일, 양향자 대표가 (이준석 신당과) 함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이야기했으며 이후 이준석 역시 양향자 대표와 함께 의논 중이라고 밝혔다. # # 이후 양향자 대표가 개혁신당 입당 인사의 국회소통관 기자회견[1] 및 창당대회의 국회의원회관 회의실 사용[2]을 지원하며 연대가 사실화 되어가고 있었지만 2024년 1월 18일 한국의희망 양향자 대표가 ‘한국의희망’ 당명 유지와 과학기술을 국정 운영의 중심에 두는 가치·비전을 수용해야만 연대 및 빅텐트에 합류할 것이라 밝혀 난관이 예상되었으나,# 결국 합당을 완료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개혁신당-한국의희망 합당 문서 참조.

  • 원칙과 상식 일부
    • 이준석은 내심 조응천 의원을 노리고 있는 듯하다. 조 의원이 대구 출신인데다가 원래 보수정당 출신이라 개인적인 친분도 있고 언론에서도 유독 조응천에 대한 언급이 많으며, 2024년 1월 9일에는 조응천의 출판기념회에 이준석이 참석하였다.
    • 김용남 정책위의장은 "조응천 의원은 (원상의) 다른 두 분과 입장이 미묘하게 다르다"며 "이준석 대표와 조응천 의원은 매일같이 소통하고 있다"고 전해 조 의원과의 연대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 2월 4일 새로운미래와 미래대연합이 공동창당할 때 조응천 의원과 이원욱 의원이 불참하면서 이들이 또다른 세력에 합류하거나 독자노선을 걸을 가능성이 커졌다.
    • 2월 5일, 정치평론가 장성철이 '이준석의 조응천에 대한 개인적 호감이 높다'라고 조응천의 합류가능성을 다소 높게 예측했다. 장윤선 기자의 경우 개혁신당 익명 관계자가 '두 의원이 오면 천군만마'라고 발언했다고 전달했다. #

  • 새로운미래
    • 이낙연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이낙연계
      • 일명 '낙준연대/준낙연대/낙석연대'라고 하는 이낙연 신당과의 연대론. 이준석 전 대표의 입장은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고 답했다. # 최근 이낙연 전 대표 또한 "이준석과 협력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 다만 기본적으로 이준석의 지지층은 보수고, 이낙연의 지지층은 진보라는 큰 차이점이 있기에 합당을 한다고 해서 온전히 그것이 본래의 지지율로 돌아올 가능성은 적다.[3] 실제로 뉴스핌의 여론조사에선 따로 당을 차릴 경우 이준석 신당이 11.4%, 이낙연 신당이 6.3%로 나왔으나 이준석-이낙연 신당은 10.8%가 나오며 일부 지지층이 민주당으로 이탈해버렸다.
      •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고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역임했던 대표적인 '친노' 인사인 조기숙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준석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의 연대를 물밑에서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미래대연합 및 기타 비명계
      • 당초 이낙연의 새로운미래와 일찍부터 함께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원상과 이낙연 간의 주도권 싸움이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통합이 질질 끌리고 있다. 개개인의 이해관계를 두고 계산기가 따로 돌아가고 있어서[4] 이낙연과 같이 할지조차 확실치 않다. 하지만 결국 공동창당을 합의했다.

  • 새로운선택금태섭 대표
    • 이준석 위원장의 정치적 스승인 김종인 전 장관이 이준석과 금태섭의 만남을 주선해주면서 제일 오랫동안 연대가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가능성은 회의적인데, 여러 번 대화를 나눴음에도 이준석은 오히려 이낙연 대표와의 차이가 금태섭과의 차이보다 적다고 얘기하며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였고 창준위원장인 천하람 역시 금태섭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 그리고 새로운선택 측이 류호정 편법 이중당적 논란을 해결하지 않으면 연대는 불가능하다. 이미 천하람 창준위원장이 류호정이 비례대표 의원에서 사퇴하지 않고 정의당 당적을 유지한 채 새로운선택에서 활동하고 있는 행태에 대해 "구질구질하다"고 일침을 날리며 탈당한다고 꼭 같이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당적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대화의 전제조건이라고 못박았다.#
    • 2024년 1월 22일 공수처, 검찰 수사지휘권 복구 등 검찰개혁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공동으로 정책 발표를 하는 등 정책 연대 가능성은 남아있다.

  • 유승민친유
    • 같은 새로운보수당계이자 대권주자인 유승민 전 국회의원의 신당 합류는 항상 거론되고 있다. 애초에 신당설이 나올 때도 이준석과 유승민이 함께한다는 전제 하에 여러 시나리오가 나왔으며, 유승민도 창당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 그러나 둘 다 12월까지 입장을 정하겠다고 했지만 진짜 12월에 탈당 후 창당을 추진한 이준석과는 달리 유승민은 해를 넘겼음에도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 12월 17일에 본인의 거취가 거론되긴 했는데 여전히 신중한 입장.[5] 창당대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개혁신당이 빅텐트로 가면 합류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 창당대회 이후 이준석 대표는 "유승민 전 의원을 모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인터뷰하였으며, 그와 친한 김준일 평론가는 "(이 대표가) 유승민 전 의원을 모시고 싶다고 얘기했으며 언제 찾아가서 이야기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고 전했다. 유승민계로 알려진 진수희 전 장관과 유의동 의원은 "신당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유 전 의원은) 아무런 명분도 없이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탈당을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드러낸 바 있는데, 유승민도 신당도 여러모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 1월 28일, 유승민이 22대 총선 불출마와 국민의힘 잔류를 선언했다.# 이로써 친유 세력과 개혁신당 간의 연계 가능성은 사실상 소멸되었다.

2. 국민의힘[편집]


친유를 비롯한 당내에 남아있는 비윤과는 관계가 나쁘지 않지만, 친윤과의 관계는 사실상 원수지간이다.[6][7] 이는 윤석열과 이준석의 갈등의 역사를 보면 알수 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부터 이준석 대표는 윤석열 후보의 방향성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해왔고, 국민의힘 친윤계 역시 당대표가 지속적으로 본인 당 소속인 윤석열 대통령을 공격한다며 이준석과 비윤계에 대해 '내부총질'이라고 비판하는 등 많은 갈등이 있었다.

이후 제20대 대통령 선거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승리하며 갈등이 어느 정도 봉합된 것으로 보였지만, 이후 징계당헌개정으로 이준석은 대표직에서 축출되며 당은 친윤 위주로 운영되었고 갈등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준석의 탈당 및 신당 창당 발표 후 윤재옥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당 지도부들은 당 내에서 대표까지 하셨던 분이 나가신다니까 아쉽다, 앞으로의 길이 잘되시길 바란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놓았다.

현재 개혁신당의 일원들은 국민의힘이 '윤석열 사당'화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창당 보름쯤 전에 허은아는 국민의힘 현역 의원 중 신당 참여를 타진한 인원이 10명이 넘는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창당 당시에는 허은아 본인만 참여하는 것에 그쳤고[8] 그나마도 비례대표라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었다. 물론 현역 의원은 아니지만 그동안 신당 참여 가능성이 점쳐지던 강성 반윤인 유승민조차 신당 참여 의사가 없음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3. 더불어민주당[편집]


당연히 국민의힘 친윤과 마찬가지로 역시 사이가 좋을 리 없다. 비명계의 경우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지만 現 지도부의 대부분인 친명에 대해서는 기존의 보수 정당들이 가져왔었던 기조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 시절 더불어민주당은 이준석을 적장으로 만나 대선지선을 연속으로 패배하기도 했으며, 공동창당준비위원장 이기인성남시의원 시절부터 이재명과 악연이 있어, '이재명 저격수'로 알려져 있다.

개혁신당이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표를 빼앗아 갈 경우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파급력에는 주시하는 편이다. 이건 이낙연신당과 국민의힘도 마찬가지.

표면적으로는 관심이 없는것처럼 하고 있다. 이준석 정강정책위원장은 왜 민주당은 비판하지 않냐는 지적에 대해 "과거에 많이 했지만, 지금은 이재명 대표가 본인의 사법리스크 방어하느라 아무 행동도 안 하고 있다"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4. 녹색정의당[편집]


지지층도 이질적일 뿐더러 젠더 등 여러 면에서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어 접점 자체가 없다. 이준석 위원장이 노동 이슈와 관련해 노회찬 의원이 추구했던 가치를 편입하겠다고 말하지만 탈당 기자회견에서 "노회찬의 정의당과 지금 정의당은 다르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으며, 이에 정의당 지도부에서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5. 진보당[편집]


이준석 위원장은 예전부터 통일은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해왔으며 친미 성향을 가졌기에[9] NL 성향의 진보당과는 상극이다.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이준석은 직접 찾아가며 시위 지지 의사를 밝힌 반면 진보당의 전신인 민중당은 오히려 중국 정부를 옹호하고 시위대를 비판하기도 했다.

현재 두 정당 모두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있지만, 비판하는 핀트 자체도 다르다.

6. 새로운선택[편집]


출범 당시에 이준석 대표가 직접 축사를 했으며 금태섭 대표도 이준석과의 공개토론에 응하는 등 긍정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김종인[10]이 두 세력의 연결을 적극 밀어주고 있다.#

다만 개혁신당의 지지층은 금태섭의 페미니즘 관련 입장이나, 이준석에 아주 강하게 적대적인 일부 인사[11]의 존재로 인해 두 정당 간의 연대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새로운선택에 합류한 류호정은 지지층 뿐 아니라 창준위원장들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어서 아직 갈 길이 멀다.[12]

이후 새로운미래, 원칙과상식과 함께 개혁신당으로의 신설합당에 참여했다.

7. 새진보연합[편집]


개혁신당이 제3지대 바람을 주도하며 따라올거면 따라오라는 전략을 취하는 반면 개혁연합신당은 민주당과 비례연합을 구상하고 있다. 저 연합에는 기본소득당 뿐 아니라 조국으로 대표되는 강성 민주당층도 있으며, 이들은 민주당 지지층에만 어필이 되고 개혁보수와는 상극이다. 이렇듯 서로가 목표로 하는 지향점 측면에서 완벽하게 반대인데 유일한 접점인 기본소득제에 관한 입장도 다르기 때문에 연대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역시 이준석이 무슨 개혁 방향을 제시했냐며 틈만 나면 까고 있다. 저쪽에서 계속 걸고 넘어지니까 이준석도 기본소득당 얘기가 나오면 기본소득당이 기본소득에 관하여 얘기하는 것을 보았느냐고 찝으면서 여의도 재건축 조합에는 정책 얘기가 많다고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원칙과 상식 멤버 3인과 정의당내 의견그룹 대안신당당원모임이 결성한 미래대연합과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신당 새로운 미래가 공동 창당을 결정하며 새로운 당명으로 개혁미래당을 내세우자, 같은 개혁 단어가 들어간 개혁신당에서 반발했다. 한편 기본소득당의 오준호 공동 대표는 개혁이란 단어에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개혁연합신당이 먼저라며 개혁신당을 비판했다.[13]

다만 개혁연합신당에서 새진보연합으로 정당 이름을 바꿨기에 명칭 문제에서 반발할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다.

8. 민심동행 (가칭)[편집]


당초 이준석계로 분류되었던 신인규 前 대변인이 국민의힘을 선제적으로 탈당한 뒤 결성한 창준위이다.

발언의 스탠스나 정치적 지향점 등은 개혁신당과 비슷하지만 신인규 창준위원장은 순혈에 가까운 개혁보수를 추구하고 있어서 빅텐트를 그리는 개혁신당과의 입장 차이가 있다. 아직까지 통합, 연대 움직임은 관측되지 않고 있다. 신인규 대표 역시, 김용남 전 의원의 개혁신당 입당에 관해 기회주의라고 비판하며, 개혁신당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김치형의 주말 뉴스 하이킥에 고정패널로 출연하면서 총선을 앞두고 양당측 패널들과 합세하여 연일 개혁신당에 대한 비판수위를 높이는 과정에서 지지층들간의 반목도 김용태 이상으로 커진 상태로 변질되었기 때문에[14] 국민의힘 탈당 전 이준석 당 대표 시절의 관계로 되돌아오긴 어려운 수준으로 강을 건넜다고 보여진다. #

다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둘 사이의 공통점이 많기에 민심동행의 창당이 실패한다면, 여기로 흡수될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일부 이준석계가 민심동행을 떠나 개혁신당으로 온 적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9. 새로운미래[편집]


양쪽이 거대 양당의 주류(친윤, 친명)에게 밀려난 동병상련의 관계이기에 연대 가능성이 가장 높아보이는 조합으로 언론에 보도되지만, 양측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한 상태다. 이준석 측은 비이재명계와의 연대 역시 문은 열어놓고 있다는 중립적인 논평을 하긴 했으나 "이낙연 총리가 문재인 정부 시절의 자산을 쓰지 않을 것"[15]과 "신당을 만드는 이유가 민주당 복당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라"[16]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며 노선을 확실히 할 것을 요구했다.[17]

그리고 이들이 민주당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호남에서도 큰 지지율을 따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합당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다고 볼 수 없다. 거기다 이준석-이낙연 신당 여론조사가 이준석 신당 단독 지지율과 얼마 차이나지 않는다는 결과를 도출한 적도 있어서 개혁신당 입장에서는 도지사, 5선 의원에 총리까지 해본 이낙연의 높은 체급에 비해 실익이 적다며 이낙연과의 연대는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반응도 있다. 이준석 역시 과거 중도보수와 중도진보가 결합했던 바른미래당 시절의 내홍을 기억하고 있다는 발언도 하였다.

이낙연이 민주당 탈당 선언을 하고 본격적으로 독자행보[18]에 나서면서 창당을 공식화하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등 개혁신당을 의식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개혁신당 측은 여전히 성급한 합당은 이르다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다. 개혁신당은 국민의힘 출신 인사들, 그리고 유승민의 합류가 우선이라 이낙연과의 섣부른 연대는 꺼린다는 분석이 있다.[19]

한편 원칙과 상식 중에서 원래부터 이념적으로 보수적 색채가 있는 조응천 의원과는 사이가 가까운 편으로, 이준석 위원장이 조응천 북콘서트에서 축사를 하며 조 의원을 추켜세우기도 했다. 개혁신당과 원칙과 상식의 소통 창구를 담당한다.

반면 이원욱, 김종민 의원은 일찍부터 이준석 신당이 보수를 고집한다면 함께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등 거리가 있다.

일단 연대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하며, 이준석, 이낙연과 김종민이 삼자대면을 할 정도로 대화의 문은 터놓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라도 맞춰주는 척 하는 이낙연, 금태섭측과 달리 여기는 연대하려는 측의 움직임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개혁신당을 견제하고 있으며, 이준석도 언젠가부터 연대 방법은 관심도 없고 비례만 신경쓰는 세력이 있어서 의심하게 됐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화로 이준석 대표가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를 화두에 올리자 해결책(12만원 교통카드 지급과 요금할인)은 무시하고 갈라치기, 혐오정치라고 비난을 가하고 있는데, 이에 천하람 최고위원이 혐오정치인과 왜 합당을 하려 하냐면서 꼬집었다.

박원석 前 의원과는 이야기가 잘 되는 듯 했으나, 금방이라도 합류할 것 같던 사람이 미래대연합에 가고 김용남이 개혁신당에 전격 합류하면서부터 이상해졌다.[20] 게다가 전장연 핵심 간부인 배복주를 끌어들인 사람도 박원석이라고 알려졌으며[21], 개혁신당 측이 우리랑 같이할 생각인데 왜 저런 사람을 데려왔을까 의문을 표하자 그게 뭐가 문제냐는 입장을 내며 조금도 양보를 안 하고 있다.

2월 9일 이전에는 합당은 사실상 물건너갔고, 대신 양당이 정책연합체를 만들어 생산적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으나, 2월 9일 예상을 깨고 합당하였다.

[1] 국회 소통관은 현직 국회의원만 이용 신청이 가능하다.[2] 역시 현직 국회의원만 이용할 수 있다.[3] 중도보수와 중도진보의 성격을 띠던 바른정당국민의당 역시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만들었음에도 그것이 온전한 지지율로 가지 못했으며, 이준석도 그 풍파를 온몸으로 직접 겪었다.[4] 당장 원칙과 상식의 일원이었던 윤영찬 의원은 탈당 직전 지역구 경쟁자였던 현근택이 사고를 치면서 잔류를 결정하였다. 그리고 목표도 이낙연은 대권이고 원칙과상식은 뱃지로 서로 다르다.[5] "2월, 3월에 정치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 "신당 얘기할 때마다 이 사람들 드는 깃발이 뭐냐 그 깃발 보고 국민들 따라오게 만들어야 되는데 결과 나쁘면 다시 돌아가려는 사람들 모여선 될 수가 없다" / "신당은 정체성이 매우 중요하다. 큰집이니 빅텐트니 하면 과연 국민들이 믿어줄까, 저는 회의적이다"[6] 같은 비윤안철수이준석 개인의 관계는 마찬가지로 원수지간이지만, 막상 개혁신당에는 문병호구혁모 등의 친안철수 출신이 어느정도 합류하는 등 계파 차원의 갈등은 크게 없다.[7] 그나마도 전 법무부장관이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는 아직 서로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는 걸 보면 나름대로 선을 지키는 편이다.[8] 심지어 친유계이자 송파 갑 지역구를 두고 22대 총선에 불출마 선언을 한 김웅 의원도 신당 합류에는 아예 선을 그었다.#[9] 이준석/사상 및 견해 참조[10] 오랫동안 내각책임제를 주장해 와서 당 강령 1호에 내각책임제를 집어넣은 금태섭을 돕고 있다.[11] 주요 당직자들인 곽대중, 옥지원은 연대가 논의중임에도 이준석을 비판하고 있다.[12] 어느 정도냐면 개혁신당 창당대회에 류호정이 참석했는데, 그녀가 마이크를 잡자 청중들 사이에서 일순 분위기가 싸해졌다. 정작 류호정 본인은 개혁신당 창당 전부터 이준석과 천아용인을 향해 계속해서 긍정적 시그널을 취하면서 일방적인 대쉬를 걸어오지만 천하람과 허은아는 이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냉소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13] 다만 개혁연합신당은 정식 당명이 아니고, 프로젝트 가칭 수준이다.[14] 신인규 본인 또한 거대 양당의 기성 정치문화에 반감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제3지대를 비판할 때는 앞선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이념과 가치의 선명성 부족을 주장하는 등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이면서 제3지대 출범과정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이준석을 거대양당과 합세하여 집단린치 하는듯한 구도로 인해 지지층 분열이 심화 되었다. 사실상 김용태 같은 경우 제3지대의 입장에 대해서 존중은 하되 "회의적이다", "부정적이다"와 같은 워딩에서 그치는 반면 직접적인 비판까지 가하는 신인규는 그보다 더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15] 문재인 정권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게 된 주된 원인을 제공한 실정과 과오에 대하여 분명히 선을 그을 것을 요구했다.[16] 3지대의 진보측 역시 개혁신당을 두고 저러다 도로 국민의힘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17] 일단 표면적으로나마 신당 창당에 덕담을 건넨 국민의힘과 총선 이후 국민의힘과의 합당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하지 않은 이준석과 다르게 이낙연-민주당은 서로 비방에 가까운 악담을 퍼부었기에 오히려 복당이 더 어렵다고 볼 여지도 있다.[18] 문재인이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행사에서 진보가 하나되어야 승리한다며 친명, 비명 양쪽에 통합을 종용했다. 그러나 이낙연은 이러한 발언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탈당했다.[19] 이준석 위원장은 유승민 의원이 보수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여러 번 얘기하였고, 개혁신당 내부에서도 빅텐트와 선명한 개혁보수를 두고 의견이 나뉜다는 발언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빅텐트를 칠 때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낙연 측이 유승민에게 러브콜을 보냈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20] 협상 창구를 이준석이 아닌 김용남이 맡게 되자 한 라디오 방송에서 김용남더러 반이준석 아니었냐고 대놓고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21] 애초에 박원석과 배복주는 정의당 내의 의견그룹 대안신당당원모임의 핵심 멤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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