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학부/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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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의 의과대학. 병원, 의학교육, 의학연구의 유기적 연계를 위해 편제상 고려대학교의료원에 속해 있는 단과대학이다. 1971년 우석대학교가 고려대학교에 합병되면서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승계되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은 연구 특성화 의과대학이다. 연구 특성화는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약학대학도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인데, 최근 국내 의료가 연구 중심으로 방향을 틀면서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내어 양쪽 모두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QS 2020 세계대학평가의 의학 항목에서 국내 3위를 기록하였다. 2017년 9월 안암병원에 3,000억 상당의 예산을 편성받은 병원 증축이 시작되었다. 단순히 병상 수를 키우는게 아니라 현재 의료사회의 흐름에 앞서 맞춤 의료를 제공하고 연구 분야를 강화할 예정이다.
공식 입학정원은 총 106명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의학교육기관이자 한국인의 자본에 의한 최초의 사립 의과대학이다.[1]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은 고려대학교의 다른 학부에 비해 그 역사가 조금 독특한데, 고려대학교 및 인촌 김성수와도 인연이 있는 우석 김종익(友石 金鍾翊)이 조선여자의학강습소(경성여자의학강습소)를 인수하여 설립한 의학전문학교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가 서울여자의대, 수도의대, 우석대 의대의 연혁을 거쳐 고려대학교의 학부로 자리를 잡은 경우이다.
경성여자의학강습소는 근대적 의학교육기관으로서 여의사만을 양성하는 최초의 교육기관이며, 특히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는 당시 교수진이 대부분 우리나라 의학자로 충당되었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민족자산으로 설립, 운영된 유일한 의료교육기관으로서의 의의를 가진다.
1890년부터 조선에서 의료활동을 하며 의학교육을 통해 후학을 양성하던 여성 서양 의사 로제타 홀[2] (Rosetta Sherwood Hall)은 당시 유교적 관습으로 인해 여성이 남성의사에게 몸을 보이는 것을 기피해 의료에서 소외되는 현실을 보고 여의사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1928년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설립하였다. 이곳은 조선 최초의 여성을 위한 의학교육기관이었다. 1933년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경성여자의학강습소로 개칭되었다.
경성여자의학강습소는 홀 여사가 은퇴해 미국으로 귀국한 뒤 재정상의 문제 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 존폐위기에 놓여 있었는데, 이 소식을 알게 된 인촌 김성수는 강습소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던 당시 강습소장 김탁원에게 순천시의 거부 우석(友石) 김종익(金鍾翊)을 소개한다. 1937년 김종익은 급환으로 별세하는데, 유언으로 의학전문학교 설립을 위해 거액의 자산을 기부하여 1938년 4월 재단법인 우석학원(友石學園)을 설립하였고, 이로써 1938년 경성여자의학강습소의 후신으로 의학전문학교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가 개교하게 된다.[3]
경성여의전의 설립 작업은 1921년 오사카의과대학을 졸업한 정구충 박사가 주도했는데, 교수진의 대부분을 경성제국대학 출신의 한국인들로 구성했다고 한다.[4] 1938년 5월에 경성의학전문학교[5] 의 병리학교실을 빌려 개교하였다가 1940년 경성고등상업학교[6] 의 교사를 인수하여 이전하였다. 1941년 부속병원이 준공되어 의료교육기관으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이 전개되었으며, 1942년 9월 제1회 졸업생 47명을 배출하였다.
광복 후인 1948년 일본식 구제 의학전문학교에서 미국식 신제대학으로 개편되며 서울여자의과대학이 되었으며, 1957년에는 남녀공학이 되면서 수도의과대학으로 개칭했다. 이후 1966년 국학대학(國學大學)을 인수합병하며 우석 김종익의 호를 따 우석대학교라는 이름의 종합대학으로 출범하였고, 의과대학은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승계된다.
60년대 말에 재단 이사장의 잇다른 사업 실패로, 우석학원은 거액의 빚과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고려대학교는 의과대학의 신설이 필수 과제였는데, 이에 서울 한복판에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을 보유한 우석대학교의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결국 우석학원이 1971년 12월 고려중앙학원에 인수되면서 우석대학교도 고려대학교에 합병되었고, 이에 따라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우석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우석병원으로 개편되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우석병원은 1976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983년에는 고려대학교의료원이 발족하였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부속 혜화병원으로 개칭했다.
종로구 명륜2가에 있던 혜화병원은 시설의 열악함과 협소한 부지 등을 이유로 1991년 안암캠퍼스의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으로 신축 이전하여 개원하였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이외에 1983년 9월 15일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로 148 (구로동)에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을, 그리고 1985년 4월 15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적금로 123(고잔동)에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을 새로 개원하였고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고대 의대는 다른 의대와 달리 병원을 구로구나 안산과 같이 당시 설립 시점으로서는 낙후된 공단 주변에 신설하여 병원이 해당 지역민의 의료복지를 도모하도록 하였다. 구로구는 7~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연탄공장과 같은 시설이 밀집한 서울시 내부의 대표적인 공단지대였고, 안산은 현재도 경기도의 대표적인 공단 밀집지대이다.
2009년부터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로 운영되었으나 2014년에 마지막 신입생을 모집, 2015년부터 학부 체제와 학사편입제도를 병행하여 운영하였으며 현재는 완전히 학부 체제로 전환되었다.
소속 대학병원은 3곳이며, 2028년까지 5곳이 될 예정이다. 현 3곳 모두 상급종합병원이자 권역응급의료센터이며, 이중 안암병원과 구로병원은 연구중심병원에 해당한다.
관련 문서: 고려대학교의료원
1. 개요[편집]
고려대학교의 의과대학. 병원, 의학교육, 의학연구의 유기적 연계를 위해 편제상 고려대학교의료원에 속해 있는 단과대학이다. 1971년 우석대학교가 고려대학교에 합병되면서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승계되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은 연구 특성화 의과대학이다. 연구 특성화는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약학대학도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인데, 최근 국내 의료가 연구 중심으로 방향을 틀면서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내어 양쪽 모두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QS 2020 세계대학평가의 의학 항목에서 국내 3위를 기록하였다. 2017년 9월 안암병원에 3,000억 상당의 예산을 편성받은 병원 증축이 시작되었다. 단순히 병상 수를 키우는게 아니라 현재 의료사회의 흐름에 앞서 맞춤 의료를 제공하고 연구 분야를 강화할 예정이다.
공식 입학정원은 총 106명이다.
2. 역사[편집]
한국 최초의 여성 의학교육기관이자 한국인의 자본에 의한 최초의 사립 의과대학이다.[1]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은 고려대학교의 다른 학부에 비해 그 역사가 조금 독특한데, 고려대학교 및 인촌 김성수와도 인연이 있는 우석 김종익(友石 金鍾翊)이 조선여자의학강습소(경성여자의학강습소)를 인수하여 설립한 의학전문학교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가 서울여자의대, 수도의대, 우석대 의대의 연혁을 거쳐 고려대학교의 학부로 자리를 잡은 경우이다.
경성여자의학강습소는 근대적 의학교육기관으로서 여의사만을 양성하는 최초의 교육기관이며, 특히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는 당시 교수진이 대부분 우리나라 의학자로 충당되었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민족자산으로 설립, 운영된 유일한 의료교육기관으로서의 의의를 가진다.
2.1. 설립[편집]
1890년부터 조선에서 의료활동을 하며 의학교육을 통해 후학을 양성하던 여성 서양 의사 로제타 홀[2] (Rosetta Sherwood Hall)은 당시 유교적 관습으로 인해 여성이 남성의사에게 몸을 보이는 것을 기피해 의료에서 소외되는 현실을 보고 여의사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1928년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설립하였다. 이곳은 조선 최초의 여성을 위한 의학교육기관이었다. 1933년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경성여자의학강습소로 개칭되었다.
경성여자의학강습소는 홀 여사가 은퇴해 미국으로 귀국한 뒤 재정상의 문제 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 존폐위기에 놓여 있었는데, 이 소식을 알게 된 인촌 김성수는 강습소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던 당시 강습소장 김탁원에게 순천시의 거부 우석(友石) 김종익(金鍾翊)을 소개한다. 1937년 김종익은 급환으로 별세하는데, 유언으로 의학전문학교 설립을 위해 거액의 자산을 기부하여 1938년 4월 재단법인 우석학원(友石學園)을 설립하였고, 이로써 1938년 경성여자의학강습소의 후신으로 의학전문학교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가 개교하게 된다.[3]
경성여의전의 설립 작업은 1921년 오사카의과대학을 졸업한 정구충 박사가 주도했는데, 교수진의 대부분을 경성제국대학 출신의 한국인들로 구성했다고 한다.[4] 1938년 5월에 경성의학전문학교[5] 의 병리학교실을 빌려 개교하였다가 1940년 경성고등상업학교[6] 의 교사를 인수하여 이전하였다. 1941년 부속병원이 준공되어 의료교육기관으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이 전개되었으며, 1942년 9월 제1회 졸업생 47명을 배출하였다.
광복 후인 1948년 일본식 구제 의학전문학교에서 미국식 신제대학으로 개편되며 서울여자의과대학이 되었으며, 1957년에는 남녀공학이 되면서 수도의과대학으로 개칭했다. 이후 1966년 국학대학(國學大學)을 인수합병하며 우석 김종익의 호를 따 우석대학교라는 이름의 종합대학으로 출범하였고, 의과대학은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승계된다.
2.2.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재탄생[편집]
60년대 말에 재단 이사장의 잇다른 사업 실패로, 우석학원은 거액의 빚과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고려대학교는 의과대학의 신설이 필수 과제였는데, 이에 서울 한복판에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을 보유한 우석대학교의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결국 우석학원이 1971년 12월 고려중앙학원에 인수되면서 우석대학교도 고려대학교에 합병되었고, 이에 따라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우석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우석병원으로 개편되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우석병원은 1976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983년에는 고려대학교의료원이 발족하였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부속 혜화병원으로 개칭했다.
종로구 명륜2가에 있던 혜화병원은 시설의 열악함과 협소한 부지 등을 이유로 1991년 안암캠퍼스의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으로 신축 이전하여 개원하였다.
2.3. 이후[편집]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이외에 1983년 9월 15일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로 148 (구로동)에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을, 그리고 1985년 4월 15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적금로 123(고잔동)에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을 새로 개원하였고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고대 의대는 다른 의대와 달리 병원을 구로구나 안산과 같이 당시 설립 시점으로서는 낙후된 공단 주변에 신설하여 병원이 해당 지역민의 의료복지를 도모하도록 하였다. 구로구는 7~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연탄공장과 같은 시설이 밀집한 서울시 내부의 대표적인 공단지대였고, 안산은 현재도 경기도의 대표적인 공단 밀집지대이다.
2009년부터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로 운영되었으나 2014년에 마지막 신입생을 모집, 2015년부터 학부 체제와 학사편입제도를 병행하여 운영하였으며 현재는 완전히 학부 체제로 전환되었다.
3. 대학병원[편집]
소속 대학병원은 3곳이며, 2028년까지 5곳이 될 예정이다. 현 3곳 모두 상급종합병원이자 권역응급의료센터이며, 이중 안암병원과 구로병원은 연구중심병원에 해당한다.
3.1. 고려대학교 안암병원[편집]
3.2. 고려대학교 구로병원[편집]
3.3. 고려대학교 안산병원[편집]
4. 기타[편집]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과 정기 고연전 외에도 의대 예과생들이 참여하는 예과 고연전이라는 행사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 한국에서 법의학 교실이 최초로 생긴 의과대학이다. 한국 최초의 법의관이라 불리는 문국진 박사가 고려대 의대 교수로 있을 당시에 국과수에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법의학 교실을 세웠다고 한다.[7] 또한, 한국에서 재활의학교실이 최초로 생긴 곳이기도 하다. 오정희 교수가 1970년 부임하여 주임교수로서 재활의학교실을 키웠으며, 현재 국내 다수 재활의학교실에 고대 의대 출신들이 포함되어 있다.
- FM인 호혈(虎血)은 호랑이의 피를 의미한다.
5. 분리된 학과[편집]
5.1. 간호학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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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학전문학교 인가연도순 기준으로 한반도에서 다섯 번째로 오래된 의과대학이기도 하다. 경성의전과 경성제대 의학부(現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의전(現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평양의전(現 평양의학대학), 대구의전(現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이어 경성여의전(現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부를 설립했으며 이후 광복 직전까지 한반도 내에는 8개의 의학교만이 존재해 의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경쟁이 매우 치열하였다고 한다.[2] 의료 선교사, 교육자. 1865년에 태어나 1951년에 세상을 떴다. 1850년에 설립된 세계 최초의 여자의과대학인 필라델피아 드렉셀 대학교 의과대학(구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을 1889년 3월에 졸업하였다.[3] 이는 김종익의 딸이 고등학교 재학 중에 병으로 숨을 거두자, 여자 의사를 양성해야겠다는 생각을 실천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우석대학교 졸업앨범에 "장녀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고 서술되어 있기도 하다.[4] 정구충 박사의 회고 및 <제59화> 함춘원 시절 참조.[5] 훗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된다.[6] 훗날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이 된다.[7] 문국진 박사는 서울대 의대 출신이라 고려대 의대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에 법의학 교실을 세우려 했으나 당시 서울대 의대 학장이 "법의학 교실이 뭐임?"이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무산됐다. 출처는 문국진·강창래 저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