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빌라스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아르헨티나의 은퇴한 테니스 선수로, 남아메리카 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획득한 선수이다. 라파엘 나달 등장 이전 흙신으로 불렸던 선수.
2. 커리어[편집]
- 개인전 통산 성적 : 722승 293패
- 커리어 통산 타이틀 획득 : 34회
- 복식 통산 성적 : 318승 160패
- 복식 타이틀 획득 : 23회
- 통산 상금 획득 : $4,923,882
그랜드슬램 대회 : 우승 4회 / 준우승 4회
- 호주 오픈 : 우승 2회 - 1978, 1979, 준우승 1회 - 1977
- 프랑스 오픈 : 우승 1회 - 1977, 준우승 3회 - 1975, 1978, 1982
- 윔블던 : 8강 - 1975, 1976[2]
- US 오픈 : 우승 - 1977
기예르모 빌라스의 연도별 메이저대회 성적표
3. 선수 소개[편집]
빌라스는 1970년대 말 남미 테니스를 강타한 테니스 스타이다.
그는 1970년대 흙신이라고 불리는데 그가 획득한 타이틀 62개중 무려 49개의 타이틀을 클레이 코트에서 획득했기 때문이다. 이는 라파엘 나달(62개)에 이은 2위의 기록이다.[3]
1969년 데뷔 이후 커리어 초반에는 좋은 성과를 보이지 못했지만 1973년 27위에 등극한 이후 1974년 무려 7개의 타이틀을 따내며 순식간에 세계 랭킹 탑10에 들게 된다.
더군다나 마스터스 컵[4] 에서 우승하며 연말랭킹 5위로 74년을 마무리 짓는다. 1975년과 1976년 2년간 WCT[5] 3회 우승을 포함하여 총 11개의 타이틀을 얻었고 커리어 하이 랭킹인 2위까지 오르게 된다.
이러한 기록들을 포함하여 빌라스는 104번의 결승진출, 4번의 그랜드 슬램 우승, 5번의 WCT우승을 포함하여 62번의 타이틀 획득을 기록한 전설적인 선수이다.
4. 세계랭킹 순위 논란[편집]
기예르모 빌라스가 항상 좋은 수준의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지만 그는 1975년 세계 2위에 오른 뒤 83주간 그 자리를 지켰다.
당시 ATP순위 산정은 매우 간단한 기술로 행해졌는데 ATP는 빌라스를 그 기간동안 단 한 번도 세계 1위로 올리지 않았다. 이에 의심을 가진 Eduardo Puppo는 다시 조사를 행했고 실제로 빌라스가 보리와 코너스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것을 발표했다.
아무리 코너스의 77년 성적이 준수했다고는 하지만[6] 코너스는 77년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준우승 2회에 그쳤다. 그에 비하여 빌라스는 150경기에 출전하여 136승 14패(승률:90.67%) 그랜드슬램 타이틀 2개를 포함하여 16개의 타이틀을 얻었다.
누가 봐도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기록이고 연말 1위는 커녕 단 한 주도 세계 1위에 빌라스가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5 13:13:52에 나무위키 기예르모 빌라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