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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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곡성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기원
2. 의주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기원
3. 대한민국 싱어송라이터, 김기원




1. 곡성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기원[편집]




출생
생년 미상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고치리
사망
1908년 11월 28일
전라남도 구례군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김기원은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고치리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출생년도는 알 수 없다. 일제가 기록한 <폭도에 관한 편책> 1908년 12월 7일자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08년경 전남 곡성, 구례 등지에서 이종협(李鍾俠) 등과 함게 의병 활동을 수행하다가 1908년 11월 28일 구례수비대에게 체포된 뒤 탈주를 시도하다가 총살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김기원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의주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기원[편집]




출생
생년 미상
평안북도 의주군
사망
1924년
중국 관전현 백석랍자 팔조구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김기원은 평안북도 의주군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출생년도는 알 수 없다. 그는 1920년경 만주의 무장독립운동단체인 대한 독립단에 가입하여 요동성 환인 등지에서 친일 단체인 보민회(保民會)를 습격해 친일파 제거에 주력하였다.

1922년 대한 독립단이 한족회·광한단 등과 회합하여 대한 통군부로 발전적 해체되고, 대한 통군부가 대한 통의부로 확대·개편되었다. 이에 김기원은 대한 통의부의 대원이 되었고, 1923년 평안북도 의주의 청성진 일본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1924년 2월, 통의부 5중대장 김석하(金錫下)의 명으로 홍학순 등과 함께 평안북도 의주와 용천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3월 15일 의주군 형하동(炯下洞) 고운식(高雲植) 집에서 현금 250원을 모금하였으며, 동년 4월 15일에는 김석하(金錫河)의 명령에 따라 홍학순과 함께 국내에 진입하여 동년 동월 18일 용천군(龍川郡) 양광면(楊光面) 용계동(龍溪洞) 이세훈(李世勳)의 집에 들어가 동인으로부터 현금 300원을 모금하였다.

그러나 통의부 내부에서 복벽주의와 공화주의 간에 갈등이 심화되었고, 복벽주의 계열이 통의부를 탈퇴한 뒤 의군부를 설치했다. 이에 김기원은 의군부에서 활동했다. 김기원은 1923년 8월경 의군부 군무총감 전덕원으로부터 유격대장 이경일(李京日)의 지휘하에 동지 50명과 함께 평북 의주군(義州郡) 청성진(淸城鎭) 주재소의 습격을 명령받았다.

그리하여 작전을 전개한 후 이경일 등 동지 20명과 함께 귀환하던 중 관전현(寬甸縣) 백석랍자(白石砬子)에서 알력이 심하던 통의부 김석하(金錫夏)부대에게 습격을 받고, 유창렬·박초식·박인원(朴仁元) 등과 함께 팔조구(八條溝)에서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김기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3. 대한민국 싱어송라이터, 김기원[편집]


1991년 8월 5일 출생.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대표곡으로는 문득, 아띠아띠, 미모사 등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1rvkkrMZ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