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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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언론인, 제31대 문화방송 사장.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신일고등학교(5회)와 고려대학교 경제학과(74학번)를 졸업하고 1981년 1월에 MBC 보도국 기자로 입사하여[1] 수습 기간을 거친 후, 1982년 경제부를 시초로 보도특집부(1984~1987 / 1989~1990[2] ), 경제부(1987~1989 / 1991~1995), TV편집1부(1990~1991) 등지를 오가며 뛰었고, 1992년 공정방송 총파업[3] 당시 노동조합(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보도부문 부위원장으로서 파업에 같이 나서다 경찰에 강제구인을 당한 바 있고, 11월 20일에는 제5대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되어 1993년 12월까지 재직했다.
1995년 사회문화팀으로 이동되었다가 얼마 뒤 경제팀으로 돌아와 1996년 차장으로 승진했고, 1997년 로스앤젤레스 특파원으로 발령났다가 2000년 9월 사회부장으로 선임되면서 귀국한 후, 한달 후 경제부장을 거쳐 정치부장(2001~2003), 보도국 부국장(2003~2005), 논설위원실 논설위원(2005~2007), 보도국 선임기자(2007~2008) 등을 거쳐 2008년 엄기영 사장 취임 뒤 3월 인사에서 사장 직속인 기획조정실장까지 올랐고, 2010년 2월 엄기영 사장 퇴임으로 사장 직무대행을 맡다가 김재철 사장 취임 후인 3월부터 마산-진주MBC 2개사 사장으로 선임되어 2011년 9월 1일에 이 둘을 합쳐 MBC경남으로 출범시켰고[4] , 2012년 4월 대전MBC 사장으로 이동됐다가 2013년 4월 김재철이 해임된 이후 공석이 된 서울 본사 사장직에 응모한 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상대 후보들인 안광한 당시 사장 직무대행과 구영회 전 MBC 미술센터 사장, 최명길 당시 유럽지사장을 득표 수에서 앞서면서 이사 9명 중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사장직에 선임되었다.
3대 황용주(4개월)와 9대 김영수[5] (3개월)에 이어 3번째로 임기가 1년도 안 된 사장이기도 하다.
사장 재임 시절 간부급들이 무시를 많이 했었고, 배현진과 이진숙을 내린 것으로 안 좋게 봤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퇴임 후 2015년부터 3년 동안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기금교수로 재직했다.
전임자 김재철과 후임자 안광한의 임팩트가 하도 강한데다 이후 사장들에 비해 임기가 너무 짧아서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려워서 그럴 뿐 이 사람도 평판이 썩 좋지는 않다. 게다가 전임 사장인 김재철이 워낙 심각하게 MBC를 망쳐놓았고, 후임자 안광한을 시발점으로 다시 암흑기가 시작된 탓에 기간이 짧았던 김종국은 지금은 걍 묻히다 못해 잊혀진 것도 있고...
한 마디로 그냥 힘이 없었던 허수아비 사장이었다.
또한 일각에서는 김재철과 안광한 사이의 땜빵 사장 정도라는 평을 내리기도 한다.
진주MBC와 창원MBC 사장 재임 당시 강제 통폐합 추진으로 인해 진주MBC 직원들이 출근을 저지해 며칠이나 출근을 못한 적이 있다. 영상.
하지만 결국에는 통합을 승인하고 만다.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언론인, 제31대 문화방송 사장.
2. 경력[편집]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신일고등학교(5회)와 고려대학교 경제학과(74학번)를 졸업하고 1981년 1월에 MBC 보도국 기자로 입사하여[1] 수습 기간을 거친 후, 1982년 경제부를 시초로 보도특집부(1984~1987 / 1989~1990[2] ), 경제부(1987~1989 / 1991~1995), TV편집1부(1990~1991) 등지를 오가며 뛰었고, 1992년 공정방송 총파업[3] 당시 노동조합(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보도부문 부위원장으로서 파업에 같이 나서다 경찰에 강제구인을 당한 바 있고, 11월 20일에는 제5대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되어 1993년 12월까지 재직했다.
1995년 사회문화팀으로 이동되었다가 얼마 뒤 경제팀으로 돌아와 1996년 차장으로 승진했고, 1997년 로스앤젤레스 특파원으로 발령났다가 2000년 9월 사회부장으로 선임되면서 귀국한 후, 한달 후 경제부장을 거쳐 정치부장(2001~2003), 보도국 부국장(2003~2005), 논설위원실 논설위원(2005~2007), 보도국 선임기자(2007~2008) 등을 거쳐 2008년 엄기영 사장 취임 뒤 3월 인사에서 사장 직속인 기획조정실장까지 올랐고, 2010년 2월 엄기영 사장 퇴임으로 사장 직무대행을 맡다가 김재철 사장 취임 후인 3월부터 마산-진주MBC 2개사 사장으로 선임되어 2011년 9월 1일에 이 둘을 합쳐 MBC경남으로 출범시켰고[4] , 2012년 4월 대전MBC 사장으로 이동됐다가 2013년 4월 김재철이 해임된 이후 공석이 된 서울 본사 사장직에 응모한 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상대 후보들인 안광한 당시 사장 직무대행과 구영회 전 MBC 미술센터 사장, 최명길 당시 유럽지사장을 득표 수에서 앞서면서 이사 9명 중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사장직에 선임되었다.
3대 황용주(4개월)와 9대 김영수[5] (3개월)에 이어 3번째로 임기가 1년도 안 된 사장이기도 하다.
사장 재임 시절 간부급들이 무시를 많이 했었고, 배현진과 이진숙을 내린 것으로 안 좋게 봤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퇴임 후 2015년부터 3년 동안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기금교수로 재직했다.
3. 평가[편집]
전임자 김재철과 후임자 안광한의 임팩트가 하도 강한데다 이후 사장들에 비해 임기가 너무 짧아서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려워서 그럴 뿐 이 사람도 평판이 썩 좋지는 않다. 게다가 전임 사장인 김재철이 워낙 심각하게 MBC를 망쳐놓았고, 후임자 안광한을 시발점으로 다시 암흑기가 시작된 탓에 기간이 짧았던 김종국은 지금은 걍 묻히다 못해 잊혀진 것도 있고...
한 마디로 그냥 힘이 없었던 허수아비 사장이었다.
또한 일각에서는 김재철과 안광한 사이의 땜빵 사장 정도라는 평을 내리기도 한다.
4. 여담[편집]
진주MBC와 창원MBC 사장 재임 당시 강제 통폐합 추진으로 인해 진주MBC 직원들이 출근을 저지해 며칠이나 출근을 못한 적이 있다. 영상.
하지만 결국에는 통합을 승인하고 만다.
5. 참고/관련 문헌[편집]
- 저서
- 세상을 보는 뉴스 - 나남. 2017.
- 세계사를 보는 새로운 눈 - 생각의창. 2022.
- 외부 문헌
- 한국언론 인물사전: 1883~2009 - 한국언론재단.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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